Page 31 - 고경 - 2018년 5월호 Vol.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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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에게 조연의 캐릭터가 내포되어 있고, 조연에게 주인공의 캐 했다. 주와 반의 관계에서 보듯이 모든 존재는 연기적 관계의
릭터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 속에 조연이 있고, 조 산물이다. 각각의 사물들은 주인공처럼 개별적이고, 고유한 존
연 속에 주인공이 있기 때문에 이를 ‘원명구덕 (圓明具德)’이라고 재로 드러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존재들은 독립된 실체가 아
설명했다. 니라 무수한 조연들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눈앞에 드
주와 반의 이와 같은 특성은 주인공과 조연이 서로 분리되 러나 있는 주인공 하나를 들어 올리면 수많은 조연들이 줄줄
어 있지 않다는 불이 (不二)를 말하는 것이며, 주인공과 조연의 이 달려온다. 마치 고구마를 수확할 때 고구마 줄기를 잡아 올
상호관계성을 말하는 것이다. 나아가 고정불변의 주인공도 없 리면 줄줄이 고구마가 달려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고, 확정된 조연도 없음으로 주연과 조연이라는 실체성이 해체 법장은 이런 관계성을 ‘하나의 줄기를 잡아 당기면 연대하
된다. 여기서 개체적 존재의 무아(無我)가 드러난다. 주인공과 여 일어난다[連帶緣起]’고 표현했다. 모든 존재는 서로 연대해
조연이라는 정체성이 해체되면 주와 반을 가르는 경계가 소멸 있고, 그와 같은 상호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겉보기
되어 주와 반이라는 차별을 초극하는 중도(中道)가 실현된다. 에는 각각 독립적 실체로 있는 것 같지만 하나를 들어 올리면
이런 관계는 사실 주와 반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주 관계의 사슬은 전체와 잇닿아 있다. 존재의 이와 같은 관계성
(主)를 알려면 주를 지탱하고 있는 반(半)을 알아야 한다. 반을 을 십현문에서는 ‘인드라망경계문’이라고 했다. 온 우주를 감싸
알려면 그 반을 지탱하고 있는 또 다른 반을 알아야 한다. 이 고 있는 인드라의 그물같이 하나로 엮여 있기 때문이다.
렇게 주와 반의 관계성을 확장해 들어가면 반은 반이라는 역 화엄십현문은 단계적으로 하나씩 들어가는 문이거나 열 개
할을 부여받은 또 다른 주인공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주인공 의 문이 각각 독립적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아니다. 어떤 문으
은 조연인 반에 의해서 존재하고, 조연인 반은 또 다른 조연인 로 들어가도 존재의 실상이라는 지평으로 연결된다. 이 문을
반에 의해서 주인공으로 존재한다. 존재의 무대 위에서 모든 통해 들어가도 존재의 실상이라는 세계가 나오고, 저 문을 통
존재들은 이렇게 서로에게 기대어 주인공이 되고, 서로를 떠받 해 들어가도 존재의 실상이라는 세계가 펼쳐진다. 그럼에도 굳
치면서 조연으로 존재한다. 이 열 개의 문을 세워 놓은 것은 중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
이상과 같은 존재의 중층적 상호관계성에 대해 법장은 “하 도록 하기 위함이다.
나를 들면 [隨擧其一] 주를 삼아 연대하여 연기한다[連帶緣起]”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산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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