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고경 - 2018년 6월호 Vol.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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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조(僧肇)와 『조론(肇論)』 1
현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경계의 무-변계소집성을 지지해주는 듯할 뿐, 경
계의 공무를 지지해주지는 못한다. 경계가 공무라면 수행의 대상이 공무 『조론』은 어떤 책인가?
가 되어 수행이 이뤄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실제를 증득한 무분별지’에 대해서는 일체의 경계의 모습이 모 活仁黔
두 현전하지 않는다고 말해졌다. 이 말은 무분별지의 경계가 원성실성이
라는 말로 이해될 수 있다. 원성실성은 모든 법이 평등하여 무차별하다는
것을 이르는 말인데, 이는 모든 법들이 ‘현존한다’는 동등한 측면에서만 알 중국 후진(後秦, 384~417)시대를 살았던 승조(僧肇, 384~414)가 저술한
아차려질 뿐, ‘각자의 특징들을 갖는다’는 상이한 측면에서는 알아차려지 『조론(肇論)』은 중국불교 역사상 중요한 전적(典籍) 가운데 하나다. 인도불
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일체의 경계의 모습이 모두 현전하 교 중관파의 개조 용수(150~250)와 서역 쿠처(庫車. 구자국) 출신 명승(名僧)
지 않는다’는 말은 제법이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는 하지만, 제법이 각 구마라집 (鳩摩羅什, 343~413)의 반야중관사상을 계승한 승조는 『조론』으
자의 특징들에 있어서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로 중국불교 삼론종(三論宗) 개창에 사상적 길을 제공했고, 인도와 중국사
이런 점들에 의거하면, 무경이란 범부에게 경계의 무-자성을 알려주고, 상의 교류 및 범어 (梵語)와 중국어의 독창적 해석에 새로운 모범을 보였다.
수행자에게 경계의 무-변계소집성을 알려주려는 말일 뿐, 경계의 공무를 『조론』은 중국사상발전사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알려주려는 말은 아닌 셈이다. 공무는 번뇌에 잠기에 할 수 있지만, 무-자 있다. 본체론(本體論)에 가까운 노장철학의 무(無)·유(有) 개념으로 형이상
성과 무-변계소집성은 번뇌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무-자성과 무-변계 학적 논의를 진행하던 위진현학(魏晉玄學)의 물줄기를 성공(性空)에 기반한
소집성에 대한 앎을 지닌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일 것이다. 공(空)·유(有) 사상을 탐구하는 수당불학(隋唐佛學)으로 돌리는 인도자 역
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나라 말기부터 청나라 초기까지 활동했던 운서주굉
(1535~1615)·자백진가(1543~1603)·감산덕청(1546~1623)·우익지욱(1599~
1655) 등 사대고승 가운데 한 명인 우익지욱(藕益智旭)은 각종 경전과 논서
들을 열람하고 지은 『열장지진 (閱藏知津)』에서 “중국에서 찬술된 저서 가
운데 승조·남악혜사·천태대사의 것이 유일하게 순일하고 순일하다. 진실
로 인도의 마명·용수·무착·세친 보살 등의 저술에 비해도 부끄럽지 않
정은해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철학박사, 성균관대 철학과 초빙교수 다. 그래서 특별히 대승종론에 포함시켰다. 나머지 여러 스님들의 저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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