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고경 - 2018년 6월호 Vol.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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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상황, 사상적 변천, 불교사적 변화 등을 차례로 천착해야 한다. 하나의
사상은 하늘에서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지지 않는다. 앞선 시대와 동시대
의 정치적·사상적·문화적 함의 속에서 태어나 성장·발전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조론』이 우리나라 불교와도 연관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삼국유사』 권4 「의해」편 「이혜동진 (二惠同塵)」 조에 『조론』
이 등장한다. “ (혜공)이 일찍이 『조론』을 보고 ‘이것은 내가 옛날에 지은 것
24)
이다.’고 말했다. 혜공이 승조의 후신임을 이로써 알 수 있다.” 는 구절이
그것. 『조론』이 나오는 또 다른 문헌은 고려 대각국사 의천 (義天, 1055~1101)
의 문집이다. 의천은 30세 때인 1084년 정월 각종 불교서적을 구하고, 화
엄종·천태종 교학연찬 등을 위해 송나라에 들어갔다 1086년 5월 귀국한
적이 있다. 당시 의천은 송나라 화엄학의 중흥조로 평가받는 항주의 정원
(淨源, 1011~1088)에게 화엄교학에 관해 묻기도 했다. 정원이 바로 송대의
『조론』 주석서로 유명한 『조론중오집해 (肇論中吳集解)』(3권, 1058년 編集)·『조
론중오집해령모초(肇論中吳集解令模鈔)』(2권, 1061년述)·『조론중오집해과(肇
論中吳集解科)』(1권) 등을 찬술한 그 사람이다. 귀국한 의천은 정원과 여러
번 글을 교환했는데, 이 글들이 『대각국사문집』과 『대각국사외집』에 지
금도 남아 있다. 주목할 것은 『대각국사문집』 제20권에 실려 있는 「해 좌
주를 전송하며 (送海座主)」라는 시에 붙은 주석. 여기에 “강산이 비록 멀리
떨어져 있으나, 마음이 서로 계합하면 바로 이웃처럼 된다.”는 구절이 있
다. 이 구절은 유유민이 보낸 편지에 승조가 답하면서 쓴 글. 원문은 “강
산수면 (江山雖緬), 이계즉린(理契卽隣).” 이지만, 『대각국사문집』 제20권에
25)
24) “(惠空)嘗見肇論曰: ‘是吾昔所撰也.’ 乃知僧肇之後有也.” [고려]일연 著, 최광식·박대재 點校, ―
『점교 삼국유사』, 서울:고려대학교출판부, 2009, p.200.
키질석굴 입구에 있는 구마라집 동상. 쿠처석굴연구소가 1994년 9월 1일 세웠다.
25) J.20, p.26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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