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8 - 고경 - 2018년 6월호 Vol.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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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아독(如是我讀) - 기복(祈福) 불교를 위한 변명                                                        이명박은 ‘부자 되세요’라는 마법의 주문으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

                                                                                                후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와 ‘창조 경제’의 불행한 파국에 대해서는 말
             감히 ‘기복 불교’를 옹호하려 합니다. ‘감히’라고 말문을 연 까닭은, 그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고 노무현 대

           동안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병폐로 수없이 지탄 받아                                               통령의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탄식입니다. 냉정한 현실 인식에서
           온 것이 ‘기복 불교’라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나온 말이었지만 성급하고도 패배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

             기복 불교에 대한 지탄의 목소리가 가장 높았던 때는 사회 변혁에 대한                                             부에서 뒷걸음질한 민주주의가 고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정당화시켜 줄
           열망이 솟구치던 민주화운동 시기였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불교의 사                                              수는 없습니다. 시장 권력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건 아니었으니까요. 현

           회적 책무에 대한 힐난으로써 기복 불교 비판이 드셌습니다. 불교계 내부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에서 정부의 역할이 강화된 것도 시장 권력이 절
           에서도 반성적 성찰이 일었습니다. 대승을 표방하는 한국불교로서는, “일                                              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시장으

           체 중생이 병들었으므로 나도 병들었다.” (『유마경』 「문수사리문질품」)는 유마                                         로 넘어간 어떤 권력을 되찾아 왔느냐, 혹은 되찾아 올 것인가? 경제에 문
           의 선언을 스스로를 향한 채찍으로 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민중불교운                                              외한으로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난망해 보입니다. 왜냐? 시장은 험상궂

           동이 일어났고, 민주화운동의 한 축을 떠맡았습니다. 조계종단 개혁에도                                               은 전제 군주의 모습이 아니라 아주 부드러운 얼굴로 ‘행복’을 ‘상품화’하기
           힘을 보탰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운동, 특히 환                                            때문입니다. 행복을 그것도 아주 헐값으로도 판다는 데 누가 시장에 반역

           경 운동 분야에서는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기여함으로써 ‘기복 불교’에 대                                             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경제가 아닙니다. ‘행복’입니다.
           한 비판도 잦아들었습니다. 한때 조계사 마당은 첨예한 사회적 갈등의 완

           충 지대이기도 했습니다.                                                                          행복이 넘치는 세상, 불행한 사람들
             변죽이 길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기복 불교’에 따른 사회적 부채감을

           털었으니 부담 없이 ‘기복’을 하자? 설마하니 제정신으로 그런 얘기를 할                                               지금 우리 사회 -아니, 소비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어떤 곳에서든- 불행
           수 있겠습니까. 솔직도 지나치면 뻔뻔이겠지요. 그럼 새로 ‘발명’이라도 한                                            한 사람은 지독히도 운이 나쁘거나 게으른 사람입니다. 도처에 행복이 넘

           우아한 기복 같은 것이 있느냐? 그건 아닙니다. 논의의 진전을 위해 현 정                                            쳐흐릅니다. 은행, 백화점, 대형 마트에서는 간곡하게 우리의 행복을 기원
           부 이전의 정부에 대해 짧게 살펴보겠습니다.                                                             합니다. ‘고객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행복한 쇼핑 되세요!’ (이런 말들이 어

                                                                                                법에 어긋나는 점에 대해서는 이 지면에서 씨름할 겨를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최대
                                                                                                의 프랜차이즈 빵집의 물류 차량에는 ‘맛과 행복을 배달합니다’ 하고 써
           1)   『숫타니파타』(전재성 역주,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번역원문을 인용했으며, 낱말과 구절을 조                             붙여 놓았더군요. (고맙기도 하셔라.) 심지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까지
              금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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