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2 - 고경 - 2018년 6월호 Vol. 62
P. 92
것은 이해된다. 왜 그런가. 불교 내에서 붓다가 입멸한 뒤, 그 진신사리를 하여 부도(浮圖)라고 이른다. 오(吳) 나라 가운데의 석불(石佛)이 바다를
모신 탑이 신앙 대상이 된 다음 역사적 몸의 그분(=붓다)이 지금 여기 안 건너 갑자기 오게 된 것이 바로 그 일이다. 지금 자네가 도상(圖像)의 도
계시니, 붓다의 ‘사리탑’이 곧 ‘붓다’ 자신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사리 (圖)를 폄훼하여 형벌의 죽임[屠]의 도(屠)로 한다면, (중략) 비슷하나 아
탑으로 대치된 붓다 즉 ‘환유’ (換喩)의 방식을 통해 이제 그분을 만날 수밖 닌 것이거나, 아니면서 비슷한 것이다. 외전 [外書]에는 중니(仲尼)를 성인
에 없었던 것이다. 다만 위대한 정신적 존재인 ‘붓다’를 그 물질적 흔적이 으로 삼지만, 내전 [內經]에는 ‘(중니의) 니(尼)란 여자[女]이다’라고 했다. 그
‘사리탑’과 좀 구별할 필요가 있다면, ‘부도’에다 ‘탑’ 자를 일부러 붙여서 런데 어떤 사람이 ‘중니 (仲尼)가 여자이다’라고 한다면, 자네가 어찌 그
부도탑이라 강조하면 될 일이다. 그래서 ‘부도’와 ‘부도탑’이 같이 쓰이는 것 것을 믿겠는가. 오히려 도(圖. tú)와 도(屠. tú)라는 글자가 (뜻이 아니라 발음
이라면 이해된다. 그런데 하필 붓다를 음역할 때, ‘뜰 부, 죽일 도’ 자를 조 상) 서로 유사하듯이 또한 무엇이 다르겠는가?”
합하여 부도(浮屠)로 썼을까. 이런저런 의문에서 『조정사원(祖庭事苑)』의 부
도(浮屠) 항목을 찾아보니 간명한 해설이 있다.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도(屠. tú)는 도(圖. tú)와 발음이 같으나 어느 쪽이
든 음역이니 그 뜻을 새겨서는 안 된다는 취지이다. 마치 ‘중니 (仲尼)’의 ‘니’
浮圖: 불(佛), 탑(塔), 승(僧) 를 여자[비구니]로 새겨서는 안 되는 것처럼, 부도를 그대로 새기면 사이비
범어로 불타(佛陀. Buddha)이다. 혹은 부도(浮圖)라 하며, 혹은 부다(部多) 해석을 하는 꼴이 된단다. 음역은 역시 음역이라는 말이다.
라 하며, 혹은 모타(母馱)라 하며, 혹은 몰타(沒陀)라 한다. 모두 오천축 사람은 살아서는 ‘나’를 로고스의 공간에서 보여주려 하나, 죽어서는 카
(五天竺. 고대 인도의 동·서·남·북·중 다섯 나라)의 말이다. 지금은 아울러 오스의 공간에 숨는다. 로고스는 정상 쪽으로 높아지려 하는 방향에서,
각(覺)이라 번역한다. 도사(道士) [장융張融이 지었다고 말해지는]의 『삼파론 카오스는 지하바닥의 굴속으로 묻히는 방향에서 의미를 갖는다. 살아 있
(三破論)』에는 “불(佛)은 옛 경본(經本)에는 부도(浮屠)라 한다. 나집(羅什) 는 역사적 공간은 상대적 세계이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시간의 파도에
이 불도(佛徒)라고 고쳤다. 그 글자의 본원[源]이 나쁜 것임을 알았기 때 깎이어 결국 흔적을 지워간다. 침묵과 고요라는 영원, 절대의 세계로 간다.
문이다. 조서 [詔]를 내려서 부도(浮屠)라고 한 이유는 호인(胡人)(=인도인) 그 세계는 무덤이라는 표식으로 대지 위에 기억된다. 우리는 상대적 세계
이 흉악한 때문이다. 노자(老子)가 그들을 교화시켰는데, 그들이 처음엔 에서 살다가 죽어서 절대적 세계로 떠난다. 적멸보궁. 그런데 그(적멸보궁)
신체 [形]를 손상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그 머리를 깎았다. 하물며 베어서 의 건축의 기하학적 형식은 구상적 세계가 아니라 추상적 세계를 보여준
죽이기까지야 했겠는가?” 석순법사(釋順法師)가 말했다. “경(經)에 이르 다. 절대는 구상에서가 아니라 추상 속에서 살아 있다. 붓다나 큰스님들의
기를 부도(浮圖)란 것은 범어(梵語)이다. 혹은 ‘장래 성천자(聖天子)가 될 진신사리를 모신 탑(스투파)은 그 자체로 그분들(붓다, 큰스님)의 법신을 상
상서로운[聖瑞] 신령스런 도상[靈圖]’이라 할 것이 바다에 떠서 이르렀다 징한다. 그렇다면, 붓다가 부도이고, 부도탑이 붓다인 것이다.
90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