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8 - 고경 - 2018년 6월호 Vol.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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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찾아 1
말한다면, 종교라고 부르는 인간의 행위가 어떻게 가능하고 어떻게 기능하
답을 구하려면 질문부터 해야 한다 는지를 심리학의 용어를 빌려 해명하려는 것이다.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
금 종교를 만들고, 신앙심을 북돋는가? 왜 인간은 절대자를 상정하고 스
김문갑 │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철학 스로를 구속할까? 등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따라
서 초점은 불교에 맞춰지겠지만, 불교에 한정하기보다는 동양의 유교와 도
교, 서양의 기독교 등 종교 일반에 걸쳐 필요한 내용을 서술하려고 한다.
연재를 시작하며 이런 비교종교학적 태도가 오히려 불교의 고유한 가치를 더 드러내리라고
믿는다.
한 사람이 미치면 그냥 미친 거지만 백만 명이 미치면 종교가 된다고 한 심리학은 프로이트부터 칼 융과 아들러를 거쳐 라캉에 이르기까지, 기
다. 그렇다면 광기와 종교 사이는 얼마나 먼 것일까? 그저 숫자에 불과한 능적인 측면을 지양하고, 철학적, 혹은 인문학적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
것일까? 생각해 보면 인류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광기에 사로잡 아울러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나 회화, 문학 작품 등에서 널리 차
혔던가. 광기의 역사에서 본다면 기독교가 일으킨 십자군 전쟁이나 히틀 용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그렇게 본다면 ‘심리학을 중심으로
러가 저지른 홀로코스트는 다를 게 없다. 이교도를 향한 증오는 신의 이름 인문학적 지평에서 바라보는 종교와 종교현상’ 정도가 이 연재를 총괄하
으로, 이민족을 향한 증오는 문명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그리고 수백 는 제목이 될 성싶다. 또한 비록 최대한 논리적 해명을 추구하겠지만, 이
만의 희생이 명약관화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광기를 추 또한 해석의 범위를 넘지 않는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이는 심리학은 비과
종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적이라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함으로써, 자칫 과학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순교나 공양은 어떤가? 독실한 신앙의 증거로 예찬되는 이 자기희생적 독단을 배제하려는 것이다. 종교적 독단만큼이나 과학적 독단 또한 경계
제의 (祭儀)가, 실상은 자기파괴적 광기가 아닐까? 광기의 역사에서 본다면 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타자를 향한 증오보다도 자기를 향한 파괴적 신앙이 훨씬 더 비극적이다.
도대체 무엇이 자기 발로 걸어가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고, 온몸을 화염의 문제를 제기하며, 원효에게 묻다
불쏘시개로 쓰게 하는가? 이것이야말로 광기의 극한을 보여주는 것은 아
닐까? 독실한 신앙심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무엇이 그 혹독한 고통을 원효 스님이 당나라 유학길에 하루는 동굴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한밤
쾌락으로 바꾸는지 궁금해서다. 중에 목이 말라 손을 더듬거리다가 바가지에 담긴 물을 찾았다. 스님은 벌
이 글은 종교를 심리학적 측면에서 이해해 보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컥벌컥 맛있게 들이켜고 다시 깊은 잠에 들었다. 아침이 밝아 잠에서 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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