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고경 - 2019년 3월호 Vol.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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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 산책 10
푸른 물이여! 청허의 마음이로다
백원기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문학평론가
오랫동안 묘향산 서쪽에 살았다 하여 묘향산인 또는 서산 대사로 불리
는 청허휴정(1520~1604)은 1534년 진사시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친구들과
지리산을 유람하던 중 숭인 장로를 만나 큰 꿈을 이루려면 ‘심공급제’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 불교에 입문하였다. 부용영관에게 선을 배우고, 18
세에 구족계를 받고 법명을 휴정이라 하였다. 휴정은 1552년 부활된 승과
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후일에 선교양종판사를 지냈다. 또 임진왜란 때 73
세의 노구로 8도16종도총섭이 되어 승병을 모집, 한양 수복에 큰 공을 세웠
다. 그 후 유정사명에게 승병을 맡기고 묘향산 원적암에서 여생을 보내다
1604년 1월23일에 원적에 들었다. 세수 85세 법랍 67세였다. 선사가 남긴
『선가귀감』은 선문은 견성법見性法을 전하고 교문은 일심법一心法을 전하는
것임을 밝혀, 수행자의 지남指南을 알려주는 귀중한 텍스트가 되고 있다.
‘회통사상’으로 선교일치를 주장하고, 유불도와의 조화로운 관계를 모색
하였던 휴정은 세속의 이해와 욕심을 버리고 초연한 ‘심공급제心空及第’와
1)
‘촉목보리觸目菩提’ 의 자세로 세상을 의연하게 살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의
1) ‘심공급제心空及第ʼ는 마음이 비어 걸림 없게 됨으로써 만인을 품을 수 있는 경지를 말하며, ‘촉목보리觸
目菩提’는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그대로 보리, 곧 진리와 지혜와 깨달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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