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고경 - 2019년 3월호 Vol.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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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에는 선승으로서의 탈속한 마음의 경계가 한결 잘 묘사되고 있다.
휴정의 어릴 때 이름은 운학이다. 운학은 15세에 지리산에 들어온 뒤 출가
의 결의를 「화개동 입산시」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이름은 화개로되 꽃은 지고 花開洞裏花猶落
청학동 둥지엔 학은 아니 드네 靑鶴巢邊鶴不還
잘 있거라 홍류교 아래 흐르는 물이여 珍重紅流橋下水
너는 바다로 가고 나는 산으로 가려네 汝歸滄海我歸山
- 「화개동 입산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지고한 몸짓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독특한
시적 서정이 만들어 낸 의경이 한결 돋보인다. 꽃피는 동네에 꽃은 피지
않고 오히려 지고 있으며, 천석泉石이 아름답고 청학이 서식하는 청학동
에 학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운학은 바다로 흘러가는 홍류교 아래 흐
르는 물과 이별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입산, 출가하고자 한다. 담대하고도
조용하게 출가의 심경을 밝히는 시적 표현에는 장차 대선사가 될 운학의
놀라운 각성과 감성이 담겨 있다.
출가 후 휴정은 임제종의 종풍을 이어받아 청산과 백운을 아끼고 그들
과 더불어 일심으로 수행정진 하였다. 그러던 휴정은 31세에 부활된 승
과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그 후 중선中選을 거쳐 37세 때에 선교양종판사
가 되었다. 또한 문정왕후의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던 보우대사의 후임으
로 봉은사의 주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벼슬과 명리가 출가의 본 뜻이
아님을 깨닫고 38세 때 승직을 버리고 금강산에 잠시 머문 뒤 40세에 마
음의 고향인 지리산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신라 때 창건된 화개동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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