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고경 - 2019년 3월호 Vol.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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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상호조응하며 하나로 된다. 휴정의 시 세계에서도 자연은 단지 대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연합일을 추구하는 이상이며 그 자신의 해탈의 경
계이다. 휴정의 이러한 선심은 춘산春山의 맑고 그윽한 공적을 일깨워 주
는 「불일암에서」라는 시에서 한결 깊어진다.
깊은 산속 암자, 붉은 꽃비처럼 흩날리는데 深院花紅雨
긴 대숲에 어린 안개는 푸른 연기일레라 長林竹翠烟
흰 구름은 산 고개에 엉기어 잠을 자고 白雲凝嶺宿
푸른 학은 스님을 벗 삼아 졸고 있네 靑鶴伴僧眠
- 「불일암에서」
세상 바깥에서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휴정의 세외지심世外之心이 잘 드
러나 있다. 화사한 꽃비가 날리고, 대숲에 안개가 드리워져 있으며, 멀리
산마루에는 흰 구름이 걸려 있다. 흰 구름은 아무런 걸림이 없는 이른바
부주심不住心, 즉 무상심의 선적 상징이다. 이처럼 분별심이 사라진 상태
에서 자연을 대하면 자연은 언제나 나와 하나가 되는 묘유의 세계를 획득
하게 된다. 산승으로서 휴정의 이러한 자연합일의 청정심은 다음의 시에
서 잘 묘출되고 있다.
선방에 높이 누워 세상 티끌 멀리 떠나 雲房高臥遠塵紛
단지 솔바람 좋아 선방문을 열어 놓았네. 只愛松風不閉門
서릿발 같은 삼척검으로 一柄寒霜三尺劍
마음 속의 잡된 생각 모두 잘랐네. 爲人提起斬精魂
- 「각행대사 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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