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고경 - 2019년 3월호 Vol.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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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허물어진 내은적암을 중수하고 맑고 가난하게 살고자 염원하며 자신

            의 호 청허淸虛를 따서 ‘청허원淸虛院ʼ이라 이름 하였다.



                도반 대여섯이                               有僧五六輩
                내은암에 집을 지었네                           築室吾庵前

                새벽 종소리와 함께 일어나                        晨鐘卽同起
                저녁 북소리 울리면 함께 자네                      暮鼓卽同眠

                시냇물 속의 달을 함께 퍼다가                      共汲一澗月
                차를 달여 마시니 푸른 연기가 퍼지네                  煮茶分靑烟

                날마다 무슨 일 골똘히 하는가                      日日論何事
                참선과 염불일세                              念佛及參禪

                                                        - 「두류산 내은적암」



              새벽에 일어나 취침 전까지 참선과 염불로 정진하던 휴정의 수행 일과
            가 선연하게 묘사되고 있다. 계곡물처럼 깨끗하고[淸]과 달처럼 사사로운

            욕심이 없는 비어있는[虛] 것을 관조하는 선승의 산중생활이 잘 드러나 있
            다. 청렬한 골짜기의 물을 퍼 차를 달여 마시는 대목은 선정에 드는 시심

            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달빛 아래 물을 긷는 것은 물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달을 길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차를 마시는 것은 달을 마시는 것

            이다. 그게 바로 다선일미요, 해와 달이 내 마음 속에 있다는 ‘방촌일월方
            寸日月ʼ의 경지이다. 어쩌면 이곳에서 『선가귀감』 등의 저술활동을 했던 10

            년이 휴정에게 가장 빛나는 시기였을 것이다.
              깨닫고 보면, 모든 분별망상이 없고 얽매임 또한 없으며, 진속일여이

            고 물아일체 그대로이다. 그래서 삼라만상은 진여일심의 표상이고 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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