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고경 - 2019년 5월호 Vol.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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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쉬운 것이 있는 것과 같다. 행하기 쉬우면 빨리 도착한다. 그러므로 마
땅히 염불하여 명호를 부르라. 아미타불의 본원이 이와 같다.” 했습니다.
아미타불의 본원이란 아미타불이 법장 비구 때 세운 48가지 원을 말합
니다. 『무량수경』에 전하는 그 본원 가운데 제18원은 고래로 많은 이들이
의지했던 원입니다.
내가 부처가 되는 때가 오더라도,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지극한 마음으로 환희심을 내어 내 이름을
열 번 불렀는데도 나의 나라에 태어날 수 없다면 나는 정각을
이루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오역죄를 범한 자나 정법을 비방
한 자는 제외합니다.
우리가 아미타불을 부르는 순간은 아미타불의 원이 이루어지는 순간
이기도 합니다. 다만 오역죄를 범한 자나 정법을 비방한 자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하지만 『관무량수경』에서는 그런 사람들조차도 10번만
아미타불을 끊임없이 부르면 극락에 태어난다 했습니다. 여기서도 ‘선지
식’을 만나야 한다는 단서가 붙긴 합니다만. 다시 활 얘기로 돌아가 보겠
습니다. 활쏘기에서 ‘만작’은 ‘일심불란’의 경지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만작을 위해 끝없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마저 잊고 만작하게
되듯이, 간절히 아미타불을 부르면 일심불란하게 되겠지요. ‘생각하는 사
람’ 하면 떠올리게 되는 ‘로뎅’이 말했습니다. “영감이란 없다. 작업이 있
을 뿐.” 로뎅의 말에서 일상이 염불이어야 하는 이유를 다시금 확인합니
다. 일이 염불이고 염불이 일이 되는 그 순간이 곧 극락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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