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고경 - 2019년 5월호 Vol.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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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의 대화가 이어진 뒤 헤리겔을 도발적인 질문을 합니다.



                “혹시 이렇게 생각할 수는 없는지요? 선생님께서는 수십 년간

                에 걸쳐 연습을 해 오신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말하자면 몽유
                병자의 확실성 같은 것으로 활과 화살을 당기고 놓는다고 말입

                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겨냥을 하시지는 않지만, 표적을 명
                중시키고 또 명중시킬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요.”



             헤리겔의 질문은 “눈을 가리시고도 표적을 맞힐 수 있어야만 한다.”는

           말로 비약합니다. 두 사람은 저녁에 다시 만났습니다. 스승은 표적 앞에
           가느다란 향 하나만 꽂고 불은 껐습니다. 스승의 화살이 어둠 속으로 날아

           갑니다. 과녁에서 울리는 소리가 명중을 알립니다. 한 발 더 명중. 두 번째
           화살은 첫 화살의 대를 쪼개면서 검은 점에 꽂혔습니다. 스승이 말합니다.



                “당신의 말대로라면 첫 번째 발사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것

                입니다. 수십 년 동안 저 표적대에 익숙해졌으니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표적이 어디 있는지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다른 변명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
                러나 첫 번째 화살을 맞힌 두 번째 화살, 이에 대해 어떻게 생

                각하십니까? 어찌 됐든 이 두 번째 발사의 주체가 ‘내’가 아니
                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쏘았고, 명중시켰습

                니다. 부처께 하듯이 예를 표합시다.”



             이후로 다시 몇 달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헤리겔이 훌륭한 발사를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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