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고경 - 2019년 12월호 Vol. 80
P. 17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는 천하일색의 여자가 이 강가에 살고 있었는데 사
방에서 돈 있는 사람, 벼슬 높은 사람을 비롯하여 온갖 사람들이 그 여자
에게 청혼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내 몸은 하나인데 청혼하는 이가 여러
사람이니 내 조건을 들어주는 사람에게 시집가겠습니다.” 하며 『법화경』
「보문품」을 외라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 이튿날 보니 스무 명이 『법화경』 「보문품」을 하룻밤 사이에 다 외워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금강경』을 외우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날 새벽에 보니 또 십여 명이나 되어, 이번에는 『법화경』을 다 외워 오라
고 했습니다. 『법화경』은 좀 많은데도 사람들은 그래도 이 미인에게 장가
들 욕심으로 죽자하고 외웠습니다. 마씨 집 아들, 곧 마랑馬郞이 사흘 만
에 다 외고 달려왔습니다. “참 빨리 외셨습니다. 한번 외어 보십시오.” 하
니 줄줄줄 다 외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참으로 천하에 좋은 낭군을 찾아
다니는 중인데 당신같이 좋은 낭군을 만났으니 이젠 한이 없습니다. 당신
에게 시집가겠습니다.”
이렇게 결정되어 혼인날을 받고 성례成禮를 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
고 신부가 방으로 들어가자, 잠시 후 축하객들이 채 헤어지기도 전에 신
부가 “아이구 배야, 아이구 머리야!” 하더니 갑자기 데굴데굴 구르다가
덜컥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랑은 이 처녀에게 장가들기 위해 밤잠도
안 자고 『법화경』을 외고 또 외었는데 신부가 죽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금방 죽은 여인의 시체가 썩더니 진물이 줄줄 흐르는 것이었습니
다. 천하일색, 그 아름답던 사람의 몸이 금방 오물이 되어 흘러내리니 참
으로 흉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만승천자萬乘天子가 좋다 해도 죽어 썩으
면 그만이듯이, 아무리 미인이라도 죽어서 썩으니 그만입니다.
마랑은 부랴부랴 관을 짜서 여자의 시신을 산에 묻어 버렸습니다. 그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