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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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를 좋아해서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군 복무 중에 폐결핵
에 걸리고 제대 후 모친이 갑자기 돌아가시자 인생무상을 느끼고
26세에 한 생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김천 수도암으로 출가했다. 은
사는 직지사 영수스님이다.
수도암에서 불교를 처음 만나 공부하니 너무 재미 있어 폐결핵 약
도 버렸는데 병이 저절로 나았다. 청암사와 남장사 강원에서 고봉,
관응, 혼해 대강백 등에게 강원 교과를 이수하였는데 불교가 정립
되었고, 강원을 마칠 무렵에는 참선에 발심하여 29세에 향곡스님
이 주석한 묘관음사 길상선원에서 첫 안거를 지낸 이래 제방선원
에서 정진하며 평생 참선의 길을 걸었다.
1968년 문경 김용사에서 법련, 무비, 법화, 정광, 혜규 등 십여 명
의 선승들이 모여 봉암사가 구산선문의 유구한 수선도량이자 광복
후 성철, 자운, 청담, 보문, 향곡 선사의 결사처인데 전쟁으로 끊어
진 전통을 되살리자고 제2 봉암사 결사의 뜻을 모아 봉암사로 가
서 당대 선지식 서옹, 서암, 지유스님을 모시고 주지 소임을 맡아
문중을 초월하여 수좌원융도량으로 조계 선풍과 결사 정신을 되
살려 지금의 대한불교조계종 종립선원 봉암사 태고선원의 기틀을
만들었다.
1971년에 문경 심원사에서 정진 중 하루는 불현듯 ‘무시이래無始以
來’라는 말뜻을 깨닫고 공空을 이해하고는 불교 이론에 대하여 더
이상 의심이 없어져 마음이 편안해졌다. 당시 선원에도 대체로 돈
오점수 공부하는 이들이 많았고, 스님도 그런 견해로 공부하던 때
라 돈오頓悟했다고 생각하고는 제방을 유력하였는데, 1975년 어
느 날 남해 용문사 염불암에서 보임保任한다고 여유롭게 있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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