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고경 - 2021년 10월호 Vol.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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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갑자기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창하시는 성철스님이 오셨다. 마
침 잘 되었다는 마음으로 가사 장삼을 수하고 삼배를 드리자마자
“스님, 돈오점수頓悟漸修가 맞지 않습니까?” 하고 대들었다. 이 말
을 듣자마자 성철스님은 홱 돌아눕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
셨다.
1980년 신군부가 정권을 탈취하고는 불교에 10·27법난을 자행하
여 당시 월주 총무원장을 비롯한 종단의 주요 소임자들이 계엄군
에 연행되어 총무원 기능이 마비되자 봉암사 대중들이 공사를 열
어 조계사에 올라와 총무원을 임시로 운영하게 되었는데, 봉암사
탄성스님을 총무원장으로 모시고 총무부장을 맡아 10·27법난의
원만한 수습과 종헌 개정 등 일대 개혁조치를 한 뒤 3개월 만에 다
시 봉암사로 돌아갔다.
1987년 봉화 각화사 동암에서 우연히 『육조단경』 「정혜품」을 보다
가 ‘백척간두 진일보’의 뜻을 깨치고 마음이 환해졌다. 이미 돈오해
서 공부를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이 깨달음은 무엇인가? 이런 의
문을 해결하고자 시중의 모든 불교 서적을 몽땅 구해서 보기 시작
했는데, 장경각의 “선림고경총서”와 성철스님의 『백일법문』과 『선문
정로』를 보고는 선의 종지와 돈오돈수에 대하여 정안正眼을 갖추게
되었다. 그제서야 성철스님을 다시 보게 되었고, 용문사 염불암에
서 큰스님께서 홱 돌아누운 것이 그대로 선사의 진면목이었음을
알고는 그때 더 대들지 못하고 그대로 물러나온 것을 크게 아쉬워
했다.
이후 한국 불교의 참선 수행을 바르게 하고 선을 널리 전하기 위해
도반 적명스님과 함께 선납회禪衲會(현 전국선원수좌회)를 창립하고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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