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9 - 고경 - 2023년 4월호 Vol. 120
P. 79
“내 그대가 그린 대나무를 보니 성글
어도 즐거움이 있고, 빽빽해도 싫지가
않다. 소리가 나지 않아도 들리는 듯
하고, 색이 같지 않아도 참되다. 기운
을 형상하지 않아도 시원한 바람이 불
어 닥치듯 하고, 덕은 베풀어지지 않
았는데도 의젓하여 공경할 만하다. 이
것은 뜻과 생각에서 나와 저절로 만족
스럽게 된 것이니 이것이 내가 아는 사진 1. 곧고 푸른 대나무 군락.
그대의 대나무다.”
이정의 대나무 그림을 통해 최립은 작
품이 가지고 있는 표면적 미감뿐 아니라
작가의 심상까지 공감하며 서로 교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문인들은 대나무를 주제로 글과
시로, 그림으로 저마다의 감흥을 표현하
고 즐겼다. 때로는 속세를 떠나 대나무의
공간에서 머무르기도 했다. 죽림竹林은 탁
한 속계와는 멀리 떨어진 장소로서 청담淸
談을 논의하는 데 적절한 장소라고 인식되
어 있었고, 자연과 함께하는 사유의 공간,
정신적 수련과 구도를 위한 신성한 공간
사진 2. 이정의 묵죽도.
을 상징하였다.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