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7 - 고경 - 2023년 8월호 Vol. 124
P. 87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는 가죽은 과감하게 찢어 버리셨어
요. 물론 그날의 가죽도 매몰차게 찢어 버리셨답니다. 겨울 가죽을
쓰지 않으실 거면서 일부러 심부름을 보내신거죠. 경험을 통해 가
죽 고르는 방법을 알려주신 거예요.”
4대째 이어온 가업이고 지금은 북과 함께하는 삶이 그저 좋은 그이지만
처음부터 북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선친께서 40여
년 전 본격적으로 북을 배우라고 했을 때, 피비린내 나는 소가죽과 씨름하
며 북을 메웠던 고된 일을 물려받고 싶지 않아 가출해 버렸다고 한다. 하
고 싶은 일도, 궁금한 일도 많은 혈기 넘치는 20대 청년에겐 너무나도 청
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는 태어나서부터 계속 보아 왔던 북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북
만드는 일은 죽은 나무와 죽은 소가죽으로 새롭게 생명을 불어 넣어 주
는 일”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곱씹어 보았고 지금까지 매일 보았던 일상
의 기물인 북이 아닌 울림의 북을 생각하며 일을 시작하게 된다.
북 만드는 작업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보통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호
흡을 맞추어야 한다. 나무틀에 맞춰 한 사람이 소가죽을 당기면 다른 한 사
람이 못질을 한다. 기술적으로 능숙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두 사람 간의
협업이 잘 이루어져야 좋은 소리를 지닌 북을 만들 수 있다. 다행히 든든
한 형제들이 북 만드는 일을 함께하고 있다. 남다르게 우애가 깊은 형제 사
이이긴 하지만 어느 날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차남(윤신 악기장 전승교
육사)과 막내(윤권 악기장 이수자)가 차례로 합류한다고 하였을 때는 걱정도
많았다고 한다. 물론 처음에는 만류하였지만 지금은 최고의 파트너로 함
께하고 있다.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