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9 - 고경 - 2023년 8월호 Vol.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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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리가 무엇인지 우리끼리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답니다. 양쪽에서 가죽을 당겨 가며 북소리를 조율하는데 눈
빛만 보아도 서로 어디가 부족하고 잘되었는지 알 수 있어요. 이미
못질 한 가죽은 뜯으면 다시는 쓸 수가 없지만 한 사람이라도 이 소
리는 아니라고 하면 바로 북을 뜯어 버립니다.”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가죽을 뜯어 버리는 형제의 결
기는 아버지의 그것과 닮아 있다. 어느새 아버지의 모습과 성품을 닮아 가
고 있는 그들이 함께 아버지의 소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주로 사찰의 법고法鼓를 만드는데, 윤종국 장인 집안에서 만들어진 법고
는 경주 불국사, 양산 통도사, 하동 쌍계사, 인제 백담사, 양평 용문사 등
전국의 사찰에서 그 웅장한 소리로 만날 수 있다. 지름 2m, 폭 2m에 달하
는 법고는 만드는 데 꼬박 3개월이 걸린다. 목재소에서 소나무를 구해 말
리고, 썰고, 대패로 다듬고, 붙이고, 가죽을 씌우면 1차적인 과정이 끝나고
붓으로 전통 단청 무늬를 입히면서 마무리 작업을 하게 된다.
완성된 북이 제 소리를 내고 중요한 의식에서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역할
을 하며 제 기능을 하고 있을 때, 범패梵唄에서 음악의 소리로 많은 이들에
게 감흥을 줄 때 윤장인의 마음은 뿌듯하다. 바로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죽은 나무와 가죽이 새로운 생명을 얻어 북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났
기 때문이다. 윤 장인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소나무와 황소의 제2의 삶은
세상에 감동과 감화를 주는 일이다. 그러기에 고되고 힘든 북 만드는 일이
지만 윤종국 장인은 하루도 쉼 없이 북을 다듬고 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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