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7 - 고경 - 2023년 10월호 Vol. 126
P. 167

아울러 니치다츠가 세운 종
             단에 관심을 표명함과 동시
             에,  니치다츠가  승려임에도

             불구하고  범어나  빨리어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놀라움
             을 표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니치다츠의 제자인 오기츠

             타다오興津忠男를 통해서 이
                                         사진 6.  일본 면화사업. 버마공장에서 면 선별작업을 하는 모
             루어졌다.                            습(1917년경).
               간디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이들 만남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간디
             는 자신이 쓴 「일본의 협위脅威」라는 논설에서, “우리의 자부심에 충격을 준

             것은 두 가지 교훈이 있다. 우리가 영국제품을 불매운동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제품의 효과가 컸다는 점이다. 인도인들에게 스와라지 정신을
             주입하는 국민회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공장주들이 경쟁을 대비
             하지 않는 이상 일본의 승리는 당연하다.”라고 일본 제품의 압도적 경쟁력

             에 대한 충격을 그대로 드러내놓았다.

               간디는 일본 제품의 경쟁력 중 하나는 낮은 노동임금에 있다고 봤다. 일
             본의 섬유산업이 조직화되고 독창적 기술력과 근면한 노동자를 긍정적 측
             면으로 평가한 반면, 노동자의 급료가 인도보다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간

             디에 비해 니치다츠는 보다 단순명료하다. 그는 이 만남을 “나는 시종일관

             합장을 하며 이 만남을 감사했다. 대화를 통해 무엇을 얻겠다는 기대보다
             간디를 만난다는 기대가 컸다. 나는 어떤 의견을 묻겠다는 생각도, 무엇을
             이해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라고 회상했다.

               오히려 양측의 측근들이 이 만남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인도 면화사업



                                                                         165
   162   163   164   165   166   167   168   169   170   171   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