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2 - 고경 - 2024년 4월호 Vol.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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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한옥에 목은당木恩堂이라는 현
판이 반갑게 맞이한다. 방안 한편에
는 목은이라는 법명을 받은 수계첩
이 고졸하게 붙어 있다. 익숙한 글씨
체인가 싶더니 서울 길상사 공사를
하면서 인연이 닿은 법정스님께서
써주신 수계첩이라고 한다. “맑은 정
신을 지니겠습니다.”라는 수계첩의
맺음말과 아담 소박한 목은당의 공
간은 어쩐지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사진 6. 대들보를 조립하기 위해 목메로 보머
리를 내려치는 모습. 책과 상장, 감사패들이 가득한 사
이로 근엄한 흑백 초상이 눈에 뜨인
다. 김영성 선생의 스승인 해강海崗 고택영高澤永(1914〜2004, 국가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이다. 돌아가신 선생님의 초상을 곁에 두고 그리워하는 마
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곡성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영성 장인은 만 스무
살이 되던 1977년에 고택영 선생의 제자로 들어가 전남 순천 송광사 침계
루 보수공사에 참여하며 전통 건축을 배우기 시작했다. 국가무형문화재인
고택영 대목장에게서 집을 짓는 기술뿐 아니라 집을 짓는 성품과 철학을
배웠노라는 그의 회상이 진지하다.
“스승님께서는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늘 정정하셨어요. 추녀목을
찾으러 전국을 다니셨고, 돋보기 없이 도면을 보시고 무병장수 하
셨답니다. 근면한 생활습관과 소식이 일상이셨어요. 곧은 성품으
로 업계 종사자들의 존경을 받으셨어요. 제자들에게 항상 당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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