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2 - 고경 - 2024년 4월호 Vol.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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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화종이라고 했다. 허무
는 서방사를 본사로 했다.
근세에 이르러 서방사의
말사가 50여 곳이나 되면
서 일대 세력을 형성했다.
에도막부는 통제를 위해
이 종파를 인정했다. 이러
한 역사가 착종되어 여러
사진 7. 나가노현의 안양사.
설화가 탄생하고, 결국 가
쿠신 교단을 보화종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는 선종이 약동하는 삶의 활
발발한 모습을 긍정하는 자세를 형성한 것과도 관계가 깊다. 알고 보면 생
활종교인 것이다.
문화교류는 가쿠신이 송나라로부터 항주 경산사의 된장 제조법을 모방
한 금산사 된장을 가져온 것을 들 수 있다. 나가노현의 안양사安養寺를 개
창하여 신슈(信州, 나가노현) 된장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1298년 92세에 접어들었어도 그를 친견하고자 하는 승속이 끊이지 않
았다. 그는 「서방사 규법 7개조」를 정하여 유계로 했다. 열반하기 직전 위
의를 단정히 하고 적연하게 단좌했다. 상좌가 “스승님께서는 마지막을 고
하고자 하시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가쿠신은 “낙諾(그렇다).” 하고 열반에
들었다. 선의 명료한 가르침 그대로의 최후 모습이다. 그는 제도를 위해서
는 무한 방편을 활용하고, 무명을 밝힐 때는 전광석화처럼 정곡을 찌른 선
승으로 민중의 선지식이 되었다. 불법이 어떤 불모의 땅에서도 꽃 피울 수
있음을 이렇게 일본의 조사들은 증명해 간다. 이야말로 불법의 약동하는
생명력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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