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선림고경총서 - 07 - 임간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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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씨가 마모되거나 베껴 쓰는 과정에서 진본과 틀리게 될까 걱정한

            나머지,이를 간행하여 후세에 길이 남기고자 하면서 나에게 서문을
            청하였다.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글 자체가 흉년의 기장[黍]이나
            겨울의 솜옷처럼 불교문중에 귀중한 도움이 되는데 굳이 내가 서문

            을 쓴 뒤에야 후세에 길이 전하여지겠는가?원컨대 이 글을 빌려
            오래오래 전하고자 할 뿐이니,이 점이 내가 잠자코 있으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던 이유이다.

               옛날 악광(樂廣:晋人)은 청담(淸談)은 잘하였지만 문장력이 좋
            지 못하여 반악(潘岳:字 安仁,문장가)에게 글을 부탁하면서 먼저
            2백 마디로 자기의 뜻을 써 달라 하였는데,반악은 그의 뜻대로 그

            것을 정리하여 명문장을 이루었다.그리하여 당시 사람들은,“만일
            악광이 반악의 문장을 빌리지 아니하고,반악이 악광의 뜻에 의지하
            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이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라고 평했다 한다.
               그러나 오늘날 각범스님은 법담과 문장에 있어서 앞서 말한 두
            사람의 장점을 한 몸에 겸비하였다.무슨 까닭일까?대부분 깊고 치

            밀한 생각을 가진 문장가라 해서 반드시 아름다운 재주가 있는 것
            은 아니고,아름다운 재주가 있는 자라 해서 반드시 깊고 치밀한 생
            각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단지 도를 체득한 자만이 편견과 집착을

            여의고 안정과 혼란을 다 녹여 마음이 맑은 거울 같으므로 사물을
            대하면 그대로 분명한 것이다.그러므로 말 나오는 대로 이야기하고
            붓 가는 대로 글을 써도 어느 곳에서나 진실이 되는 것이다.그렇다

            면 각범스님이 두 사람의 장점을 겸할 수 있었던 까닭은 도를 체득
            하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그리하여 나는 사람이라면 도를 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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