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선림고경총서 - 07 - 임간록(상)
P. 22
22
(開法)을 하자 납자들은 앞을 다투어 스님을 스승으로 섬겼다.어사
중승(御史中丞)왕수(王隨)가 전당(錢塘)에 부임하면서 스님에게 문
안을 가는 길에,호상(湖上)까지 가서는 말에서 내려 시종을 가라
하고 홀로 걸어서 스님의 침실을 찾아갔다.때마침 스님은 두툼한
솜옷을 껴입고 햇볕을 쬐며 태연스레 앉아 있다가 대뜸 그를 보고
물었다.
“관리의 성은 무엇이오?”
“ 왕가입니다.”
왕수가 절을 올리자,스님은 그에게 방석을 밀어 주며 땅바닥에
깔고 앉게 한 후,하루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다.왕수가 떠나자 문도
하나가 스님께 따졌다.
“왕의 신하가 찾아왔는데 어찌하여 극진히 대접하지 않습니까?
이 일은 우리 모든 대중에게 관계되는 것으로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자 스님은 그저 “알았다,알았다”할 뿐이었다.
뒷날 왕수가 다시 절을 찾아오자 대중들은 큰 범종을 울리고 많
은 스님들이 달려나와 맞이하였으며,스님 또한 마중 나가 소나무
아래 서서 그를 맞이하였다.왕수가 멀리서 이 모습을 보고는 가마
에서 내려와 스님의 손을 잡으며 말하였다.
“어찌하여 지난날 만났을 때처럼 하지 않으시고 갑자기 번거롭
게 예의를 갖추십니까?”
이에 스님은 곁에 있는 스님들을 돌아보고는 걸어가면서 말하였
다.
“중승(中丞)께서야 나의 뜻을 알지만 사중의 대중들이 눈을 부라
리는데야 어떻게 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