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0 - 선림고경총서 - 12 - 임제록.법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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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임제록․법안록
다가 정작 스님께서 교화를 왕성하게 펴실 즈음에는 몸째로 가
버렸으니,이는 소석가(小釋迦)라 불리는 앙산스님의 예언에 부
합된 것이었다.그때 마침 난리가 나서 그곳을 떠나셨는데,태위
(太尉)묵군화(黙君和)가 성안에 있는 자기의 저택을 절로 희사
하여 그대로 임제라는 액호로 현판(懸板)을 달고 스님을 맞아
계시도록 하였다.
뒤에 옷깃을 떨치고 남쪽으로 향하여 하북부(河北府)에 이르
시니,부주 왕상시가 제자의 예를 갖추어 맞이하였다.얼마 되지
않아 곧 대명부(大名府)의 흥화사(興化寺)로 옮겨 동당에 기거하
셨다.스님께서는 병은 없으셨는데,하루는 갑자기 옷깃을 여미
고 자리에 앉으시더니 삼성(三聖)스님과 문답을 마치고 조용히
서거하셨다.
때는 당나라 함통(咸通)8년 정해(丁亥,867)정월 열흘이었
다.문인들이 대명부 서북쪽에 탑을 세워 스님의 전신(全身)을
모시니 시호는 혜조선사(慧照禪師),탑호는 징령(澄靈)이라 하였
다.합장하고 머리 숙여 스님의 약력을 쓰노라.
법제자 진주 보수사 주지 연소(延沼)는 삼가 쓰고,
법제자 대명부 흥화사 주지 존장(尊獎)은 교감하다.
師 의 諱 는 義玄 이니 曹州南華人也 라 俗姓 은 邢氏 니 幼而穎異 하고
長以孝聞 하니라 及落髮受具하야는 居於講肆 하야 精究毘尼 하고 博
賾經論이러니 俄而歎曰 此 는 濟世之醫方也 요 非敎外別傳之旨 로
다 卽更衣遊方 하야 首參黃檗 하고 次謁大愚 하니 其機緣語句 는 載
于行錄 하니라 旣受黃檗印可 하고 尋抵河北 하야 鎭州城東南隅 에 臨
滹沱河側 하야 小院住持 하니 其臨濟 는 因地得名 이니라 時 에 普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