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선림고경총서 - 25 - 종문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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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혜(大慧宗杲)선사의 기변(機辯)을 병법에 비유하자면 한신(韓信:
漢代의 명장)과 백기(白起:전국시대의 명장)에 짝할 수 있다.그들이 성
채를 휩쓸고 고을을 섬멸할 때 거치적거리는 자는 격파하고,부딪치는
자는 땅바닥에 쓰러뜨리니 백만이나 되는 마구니들은 멀리서 그의 모습
만 바라보고서도 창을 거꾸로 든 채 도망친다.사람들은 당당한 군사가
북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가로막는 자가 없는 것을 볼 뿐,대
장기 아래 편히 앉아 있는 노선사는 이제껏 한 치의 쇠붙이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
휘하의 비장(裨將)들은 그가 구축한 진영터의 발자취를 살펴보면서
그가 탄식하고 말했던 것들을 모아 무고(武庫) 라 이름하였으니 우리
국왕의 창고에도 과연 그와 같은 칼이 있었구나.그러나 선사께서 말하
지 않았던가.취모검(吹毛劍)이란 움직이지 않아도 온 누리 모두가 칼과
창이라고.잠깐 이 창고 속에 들어간 자가 혹시 도적 마음을 모두 없애
고 재빨리 칼날 위에서 몸을 뒤집을 수 있다면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중
달(司馬仲達)을 도망치게 만드는 격이며,그렇지 못하다면 칼을 잃어버
린 지 오래인데 그제서야 뱃전에다 칼이 떨어진 곳을 새겨 놓는 자일 것
이다.나를 알아줄 것도,나를 허물할 것도 오로지 춘추(春秋) 뿐이다.*
1)
순희(淳熙)병오년(1186)4월 초하루 담재(淡齋)에서
이영(李泳)이 쓰다.
*공자(孔子)가 춘추(春秋)를 저술하고 나서 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