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선림고경총서 - 25 - 종문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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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대혜 묘각(大慧妙覺:1089~1163)스님은 임제종 양기계통의 선사로
서,이름은 종고(宗杲)이고 자(字)는 담회(曇晦),호는 묘희(妙喜)또는 운
문(雲門)이라고도 한다.중국 송(宋)나라 철종(哲宗)원우(元祐)4년 선주
(宣州)영국현(寧國縣)에서 출생하였으며,속성은 해(奚)씨이다.
스님의 이야기는 대혜연보(大慧年譜), 연등회요(聯燈會要)(17권),
보등록(普燈錄)(15권), 오등회원(五燈會元)(19권), 불조역대통재(佛
祖歷代通載) (20권), 석씨계고략(釋氏稽古略) (4권), 속전등록(續傳燈
錄) (27권), 대명고승전(大明高僧傳) (5권)등등에 실려 있다.이에 따르
면 스님은 어려서는 유학을 공부했었고,16세가 되어 동산(東山)혜운사
(慧雲寺)의 혜제(慧齊)스님을 찾아가 득도하였다.이어 보봉(寶峰)의 담당
문준(湛堂文準)회하에 들어갔다.정화(政和)5년(1115)문준스님이 입적
하면서 원오 극근(圜悟克勤)스님을 찾아가라고 유언하였다.그 후 선화
(宣和)6년(1124)에 비로소 원오스님을 뵙고 그의 회하에 들어가 각고 끝
에 대오하였다고 하니 이때가 37세였다.
원오스님이 촉(蜀)땅으로 되돌아간 뒤에는 금나라와의 전란을 피하
여 강서성 해혼(海昏)의 운문암(雲門庵)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소흥(紹興)
4 년(1134)복건성의 양서암(洋嶼庵)으로 이주하였다.여기에서 묵조선(黙
照禪)을 공격하고 공안선(公案禪)을 고취했다고 한다.소흥 7년에는 장릉
(張凌)의 추천으로 칙소에 의해 경산(徑山)능인선원(能仁禪院)에 주석하
면서 종풍을 크게 떨치니 모두들 임제스님이 다시 출현하였다고 말하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