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 - 선림고경총서 - 28 - 고애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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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2)













               지난날,언계 불지(偃溪佛智:1189~1263)스님이 영은사(靈隱寺)에
            계실 때 나는 임안(臨安)에 잠깐 머무르면서 서로 자주 왕래하며 의기가
            상통한 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그러므로 고애스님의 이름을 오래 전
            부터 알고 있었으나 얼굴을 마주쳐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우연히
            천남(泉南)에 계시기에 흥복사(興福寺)를 지나는 길에 그를 만나 보니 마
            치 한 집 사람 같았다.
               그는 성품이 고요하고 담박하여 말씨가 적은,언계스님이 도장을 풀
            어 준 제자였다.내 떠나 올 무렵에 들리는 말에 의하면,고애스님은 계
            해년에 경산사(徑山寺)초막으로 돌아와 평소에 듣고 보았던 큰스님들의
            깨친 기연(機緣),그리고 대중에게 설하신 법어 및 그들의 저작,그리고

            유실되어 떨어져 나간 문집조각과 비석문으로서  오등(五燈) 에 수록되
            지 못한 것들을 모아 붓 가는 대로 기록하여  만록(漫錄) 이라 이름하였
            다고 한다.그는 본래 언계스님에게 보여드릴 생각이었으나 꾸지람을 들
            을까봐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는데 뜻하지 않게도 그 해 여름 5월 언계
            스님이 말하기를,“그대가 쓴 글을 잡문이나 본뜬 것으로서 이야깃거리
            나 삼을 정도로 생각했었는데,막상 그 책을 펼쳐 보니 생각과는 달리
            실려 있는 기연과 법어들이 모두가 중생을 도(道)로 인도하겠기에 그 옆
            에 비점(批點)을 찍어 표시하고 그 나머지 부분을 삭제하였다”고 하며,
            이를 잘 보관하도록 부탁까지 하였다고 한다.

               내 일찍이 이를 보고 싶었으나 미처 보지 못했었는데,어느 날 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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