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 - 선림고경총서 - 32 - 종용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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냈고,둘째,학인들이 검토하는 수고를 덜어주었으며,셋째,나 만송은 옛
것을 서술할 뿐 창작하지 않고 제멋대로 억단하지 않았습니다.
불과(佛果)의 벽암집(碧巖集)과 감히 비해 보자면 편편마다 빠짐없
이 시중(示衆)을 갖추었고,원통(圓通)의 각해록(覺海錄) 에 감히 비해
보자면 구구마다 지리멸렬하지 않게 하여 완비하였습니다.착어(着語)하
고 안목을 드러내며 첨삭한 부분에 있어서도 역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임오년 말 담연거사가 굳이 염송해 내라는 편지를 보내 왔으므로 부
득이 집안 허물을 들춰내 나에게도 그대에게도 누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계미년 상사일(上巳日)촌로 만송은 바람결에 편지를 실어 보내며,할
말 다 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