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고경 - 2015년 2월호 Vol.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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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삶을 거스르거나 앞질러 갈 뿐, 삶과 하나가 되지                                    쉴 줄 알아도 부처라는 선언이다.

          못한다. 오직 죽음만이 생각대로 살 수 있다. 한 생각 참을                                      달마는 말만 번드르르한 겉치레인 의식 (儀式)을 매우 싫어
          줄 알고 마음 한 번 접을 줄 안다면, 이 세상 어디나 살 만                                   했다. 반야다라 역시 문자의 총체이자 진리의 상징으로 갈
          한 곳이다. 단언컨대 모든 현실은 끝내 마음속의 현실이다.                                     음되는 경 (經)을 부정하고 있다. 천도재 (遷度齋)는 죽은 자를
          그리고 현실은 현실 이전에 사실이고, 슬퍼하기에 앞서 넘어                                     위로하기 위한 주문인 동시에, 살아 남은 자를 달래기 위한
          서야 할 것들이다. 집착이 아닌 집중이 관건이다.                                          주문이다. 그래서 재를 지내려면 경을 읊어야 하는데, 그럴

                                                                               듯한 말 몇 마디에 망자의 신세가 나아질 순 없는 노릇이다.
            【제3칙】                                                              더구나 ‘달램’에는 필연적으로 눈가림과 속임이라는 비용이
            동인도 왕이 조사에게 묻다(東印請祖, 동인청조)                                         지불된다. 살아 있는 자는 묵묵히 살아 있음을 살고, 죽은

                                                                               자는 잠자코 사라져주는 게 생사의 응당한 도리다.
            동인도의 어느 국왕이 제27조(祖) 반야다라 존자에게 재                                      빈도는 ‘덕 (德)이 적다’는 뜻으로 스님이 스스로를 낮출 때
            (齋)를 청하면서 물었다.                                                     쓰는 말이다. 음과 계는 오음(五陰)과 삼계 (三界)의 축약이며,
            왕 : 어찌하여 경(經)을 읽지 않으시오?                                            삶은 오음과 삼계로 구성된다. 색 (色, 물질) 수(受, 인지) 상(想,
            반야다라 : 빈도(貧道)는 숨을 들이마실 때 음(陰)과 계                                   표상) 행 (行, 의지) 식 (識, 분별)으로 이어지는 망상의 메커니즘

            (界)에 머물지 않고, 숨을 내쉴 때 뭇 인연에 빠지지 않습                                  이 오음이다. 여자는 애당초 한낱 몸뚱이일 뿐이지만, 오음
            니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읽지 않는 듯해도 백천만억 권                                    때문에 젊고 예쁜 여자가 되고 그래서 갈증을 유발한다. 욕
            의 경을 읽는 셈입니다.                                                      계 (欲界, 욕망) 색계 (色界, 물질) 무색계 (無色界, 영혼)를 지칭하는

                                                                               삼계는 중생이 살아서 떠도는 세계다. 무색계는 얼핏 고상
            반야다라(般若多羅)는 보리달마(菩提達磨)의 스승이다. 불                                    해보이지만, 사실상 ‘멍 때리고 있음’의 상태다. 생각을 놓을
          교의 초조(初祖)인 부처님으로부터 이어진 반야다라의 법을                                      수 있는 시간은 잠깐이며, 인간은 죽는 날까지 탐하거나 헐
          계승한 제28조 달마는, 중국으로 건너가 독자적인 선법 (禪                                    떡이면서 배회하거나 고꾸라진다.
          法)을 펼쳤다. 불립문자(不立文字)는 조사선의 알짬 가운데                                       물론 넘어지지 않는 방법은 간명하다. 달리지 않으면 된

          하나다. ‘문자’란 자잘한 분별부터 온갖 학문과 이념을 아우                                    다. 아울러 방황하고 싶지 않다면 결정을 빨리 내리면 그만
          른다. 곧 깨닫겠다고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으며, 그저 숨만                                    이다. 여러 갈림길 가운데 하나를 택한 뒤에, 뒤돌아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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