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고경 - 2015년 2월호 Vol.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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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절도 절이 아니다. 절은 가장 멀리 있고 가장 재미없는                                    게 된다. 기어이 안다. 타고난 체형이 그렇고 부모의 신분이

          처소여야 한다. 훗날 기어이 마지막 희망마저 잃어버릴 이들                                     그렇고 연인의 변심이 그렇고 남성형 탈모가 그렇다. 일절
          에게, 삶의 진면목을 똑똑히 일러주려면. 이렇게도 사람이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의 유전 (流轉) 앞에서, 바꿀 수 없음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위로하려면. 아무도 가고 싶어                                     절감하고 되돌릴 수 없음을 탄식한다. 삶은 얼핏 내것 같지
          하지 않는 자리에서 아무 것도 아닌 몸짓으로, 꿋꿋이 버티                                     만, 삶이 나를 사는 것이다. 끊임없이 들썩거리고 우글거리
          는 절은 거룩하다.                                                           는 조건과 환경 속에서, 쉴 새 없이 뒹굴고 빌어야 하는 실

                                                                               존(實存)은 독하다.
            【제5칙】                                                                쌀값은 내가 마음대로 정할 수 없고 조작을 했다간 처벌

            청원의 쌀값 (淸源米價, 청원미가)                                                받는다. 선사가 말한 쌀값이란 삶의 근본적인 피동성을 의
                                                                               미한다. 시장경제 체제에 던져진 인간의 땀과 피로, 음모와
            어떤 스님이 청원행사(淸源行思) 선사에게 물었다. “어떤                                    배신, 타협과 조정의 총량이자 응축이다. 누구나 쌀값에 연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여릉(廬陵)의 쌀값이 얼마나                                    연할 수밖에 없고 또한 연루되어 있다. 벌어먹든 빌어먹든
            되던고?”                                                              밥이 필요한 형편이라면, 쌀값이 부여한 노역과 쌀값이 지정
                                                                               한 처지를 감수해야 한다.

            여릉은 양자강 이남에 위치했다. 오늘날의 지명으론 중국                                       그럼에도 우리는 산다. 살아지니까 살아가는 것이고, 살
          장시성 [江西省] 지안시 [吉安市]. 전체 면적의 절반이 산지인 반                                아야 하니까 울면서도 겨자를 먹는다. 본분과 책임을 지키
          면, 전형적인 아열대성 기후여서 곡물이 자라기 순조롭다.                                      기 위해 힘겹고 눈물겹게 제 나름대로 쌀값에 기여하는 중

          청원 선사는 쌀이 많이 나고 사람도 많이 오가는 이곳에서                                      생은, 제아무리 못났어도 부처다. 억지춘향은 곤욕스럽지만,
          태어났다. ‘쌀값’이란 일상성의 상징이다.                                              춘향이는 그래도 예쁘다.
            이런저런 인연들과 부대끼며 이러구러 버티는 것이 삶의
          본질임을 일러주는 대답이다. 산다는 건 이러나저러나 산다
          는 것이어서, 죽어간다는 것이어서, 아무리 뾰족한 수라도

          결국엔 무뎌진다.                                                            장웅연(張熊硯)      집필노동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부터 불교계에
                                                                               서 일하고 있다. ‘장영섭’이란 본명으로 『길 위의 절』, 『눈부시지만, 가짜』, 『공부하지 마라』,
            살다보면 내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알                                     『떠나면 그만인데』, 『그냥, 살라』 등의 책을 냈다. 최근작은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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