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15년 3월호 Vol.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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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없이 머리 색깔을 운운하며 끝까지 모르쇠 타령이다.   【제7칙】

 이들을 본떠서 엉뚱한 이야기 한 토막.   약산이 법좌에 오르다 (藥山陞座, 약산승좌)
 바둑의 역사는 5천년을 헤아린다. 바둑을 발명했다고 추
 정되는 인물은 전설상의 성왕인 요(堯) 임금이니, 중국의 출  약산유엄 (藥山惟儼) 선사는 오랫동안 법좌에 오르지 않았
 발과 함께 시작된 게임인 셈이다. 또한 구경만으로도 제법   다. 절 살림을 맡아보는 원주(院主)가 간청했다. “대중들
 흥미로운 게 바둑이다. 백돌과 흑돌이 한 집이라도 더 차지  이 오래 전부터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

 하기 위한 분투를 적은 기보(棋譜)는, 전쟁 이전에 풍경이다.   는 부디 법을 설해 주소서.” 마지못해 약산은 종을 치라고
 치열하기에 앞서 아름답다.   하여 대중들을 불러 모았다. 법좌에 올라 한참을 앉아 있
 선문답의 주인공들도 바둑을 뒀거나 최소한 바둑이 무엇  던 그는, 이내 자리에서 내려와 방으로 돌아갔다. 화가 난

 인지는 알았을 사람들이다. 지장은 머리가 하얘졌을 것이고,   원주가 꽁무니를 쫓으며 따졌다. “큰스님께서는 대중에게
 회해가 지향하는 무(無)는 시커멓다. 곧 지장이 백돌이라면   설법을 해주시겠다더니 어찌하여 한 말씀도 하지 않으십
 회해는 흑돌이다. 머리가 아프다는 지장이나 모르겠다는 회  니까?” 약산이 어이 없어하며 대꾸했다. “경에는 경사(經
 해나, 자기 삶의 당체 (當體)를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 머리  師)가 있고 논에는 논사(論師)가 있거늘 어찌 노승을 괴이
 가 아프다는 것이 어리석은 것은 아니요 모르겠다는 것이   하게 여기느냐!”

 틀린 것은 아니니까. 경쟁이 아닌 관조의 영역에서 받아들
 이는 인생은 그다지 복잡하지도 아리지도 않다. 그냥 바라보  제1칙 ‘세존승좌’의 반복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신조
 면 그만인데, 대개는 훔쳐보거나 노려보는 통에 정작 봐야   로 하는 선사에게 입방정을 요구했으니, 당연히 불쾌할 일이

 할 것을 못 본다.   다. 그나저나 절에 스님의 법문이 없으니, 절은 무얼 먹고 살
 아울러 도진개진. 어차피 아무리 싸워봐야 알음알이와   는지…라는 입방정.
 말다툼으로는 진리를 인식하지 못한다. 마조의 딴청은 쓸데
 없는 망상 피우지 말고 마음을 정히 다스리라는 무언의 훈  【제8칙】
 수로도 들린다. 깨달음은 ‘깨달음’이란 글자에만 있다. 쉬는   백장과 여우 (百丈野狐, 백장야호)

 것과 내려놓는 것을 능가하는 정의는 없다. 끝장이 나기 전
 엔 결코 끝나지 않는 머리싸움.  백장이 상당(上堂)해 법문을 하면 한 노인이 나타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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