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고경 - 2015년 3월호 Vol.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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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1 데 이제와 생각하니 어록에 넣을 만하다.
엄마는 하기 싫은 건 안 하는 사람이다. 환갑이 지나고 가
족들 앞에서 선언을 하셨다. 여자는 정년퇴직도 없냐, 내가 #기억3
왜 살림을 도맡아야 하느냐, 남자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엄마와 하남 정심사에 간 일이 있다. 정심사가 생긴 지 얼
니들도 다 컸으니까 이제부터는 각자 알아서 살라는 것이었 마 되지 않았고 내가 <선림고경총서> 일을 맡은 뒤였으니까
다.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아버지도 오빠도 나 아마 1988년이었던 것 같다. 평소에 엄마와 쇼핑이나 목욕
도 알아서 살았다. 엄마가 국 한 솥을 끓여놓으면 그걸 매우 탕이나 미장원에도 같이 가본 적이 없던 터라 절에 동행했
감사하게 얻어먹었다. 던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었다. 수박 한 통을 올려놓고 부처
명절이나 제사 때는 국에 간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님 앞에 곱게 절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저렇게 콧대 높은
하지 않으셨다. 이 씨네 제사를 왜 송씨가 준비해야 하느냐 양반을 누가 또 납작 엎드리게 할 수 있을까, 부처님은 역시
면서 몸에다 이불을 둘둘 말고 건넌방으로 가서 일찍 주무 대단한 분이다.
셨다. 덕분에 명절 때는 엄마 대신 시집도 안 간 내가 며느리 절에서 나오는 길에 엄마가 원영 스님이 맘에 든다고 하
증후군을 앓았다. 옆집 아줌마였으면 ‘저 아줌마 멋있다’고 면서, 저 사람 사위 삼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감히 스님을
할 뻔했는데 이분이 내 엄마인 건 일종의 재앙이다. 엄마를 두고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을까. 원영
당할 순 없지만, 하기 싫은 일을 참고 하는 소질이 부족한 스님, 하마터면 팔자 고칠 뻔했다. 이번 장례식 때 오래된 기
걸 보면 내가 엄마 딸이 맞긴 하다. 억을 꺼내서 전해주었더니 스님이 뒤집어지셨다. 그리고 울
엄마 사위가 될 뻔 했던 원영 스님께서 49재를 맡아주셨다.
#기억2 아버지 가셨을 때는 스승께서 제사를 맡아주셨는데 이번에
몇 년 전에 엄마가 잠깐 기절했다 깨어난 적이 있다. 당신 는 연로하신 분께 민폐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어
도 놀랐는지 정신 있을 때 유언을 해야겠단다. 긴장을 하고 쩔까 하고 있는데 원영 스님께서 정심사에서 하자고 딱 결정
귀를 쫑긋 세웠다. “그동안 잘 살았다. 고맙다.”하셨다. 이어 을 해주셔서 번뇌를 덜었다.
질 말을 기다리는데 말씀이 없다. 침묵을 깨고 물었다. “어,
그래서?” “뭘? 이게 끝이야.” “무슨 유언이 그래?” “그래? 그 #기억4
럼 너도 잘 살어~” 그때는 별 싱거운 유언도 다 있다 싶었는 아버지 49재가 생각난다. 아버지 가시기 직전에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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