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고경 - 2015년 5월호 Vol.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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렇고 큰스님께 밥값을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큰스
님의 면모를 다시 조명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이번 학술대회
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권 교수님은 그러면서 성철 스님과의 인연을 자연스럽게
꺼냈다. 성철 스님과의 만남은 운명 그 자체였다.
촉망받던 축구 유망주가 불교 꿈나무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 분위기는
유교였지만 사실 어머니께서는 각화사 동암에서의 기도 끝
에 저를 낳으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경상도 사나이’로 컸습니다. 그러다 축구 오늘날의 김룡사 전경
를 시작해 중학교 때는 주장을 맡아 여러 차례 팀을 우승으
로 이끌기도 했어요. 당시 축구명문 고등학교에서 저를 스 스님이 권 교수님을 소개하자 “고등학교 입학시험도 떨어진
카우트했는데 마지막에 일이 꼬이는 바람에 잘 안됐습니다. 못난 놈이 무슨 49재고? 너는 제사에도 참석하지 말고 앞으
결국 저도 다른 친구들과 같이 고등학교 입시를 치렀습니 로 일주일간 매일 삼천배부터 하라.”고 성철 스님은 불호령
다. 사촌이 서울 경복고에 다니고 있어서 저도 그 학교에 지 을 내렸다.
원했는데 ‘당연히’ 떨어졌습니다. 수업도 거의 안 듣고 운동 “파계사 성전암에서 10년간의 동구불출(洞口不出)을 하고
만 했으니 붙을 리가 없죠. 하하. 대입도 아닌 고입 재수를 오셔서인지 큰스님께서는 꽤 마르신 몸이었습니다. 눈에서
하고 있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는 불이 뿜어져 나오는 듯 했어요. 큰스님과 눈을 마주치는
석남사 법희 스님이 속가 고모할머니인데, 스님께서 성철 순간 압도당했지요.”
큰스님이 김룡사에 계시다며 거기서 할머니 49재를 지내자 “큰스님의 말씀”이어서 절을 하기 시작했다. 새벽 3시에
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김룡사에 재를 지내러 가서 큰스 일어나 아침공양 전까지 1000배, 아침을 먹고 점심때까지
님을 친견하게 됐습니다.” 1000배, 오후에는 사찰 청소 등의 일을 하고 저녁 공양을
김룡사에서 시자스님의 안내로 성철 스님을 만났다. 시자 하고 다시 1000배를 하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첫날 삼천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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