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고경 - 2015년 5월호 Vol. 25
P. 28

큰스님께서 저에게 그러십니다. ‘나보고 절을 하라 하나. 부                                      “결혼 직후에 큰스님을 친견한 후 뵙지를 못했어요. 그런

          처님 보고 하라 하지. 사람은 정신이 근본이지만 자신의 육                                     데 열반 전날 큰스님께서 제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늘에
          신을 이기는 것도 참 중요하다. 자기 몸을 이기지 못하면 수                                    엄청 커다란 모습으로 나타난 큰스님께서 제게 미소를 보여
          행을 못한다.’ 이 말씀을 듣고 몸을 조복시키는 수련의 차원                                    주셨습니다. 아무 말씀도 없이 말입니다. 조금 이상하다 싶
          에서 삼천배가 엄청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                                     었는데 다음날 오후에 큰스님께서 열반하셨다는 소식이 들
          게 됐습니다.”                                                             렸습니다. 너무 죄송했습니다.”

            교수님은 대중들이 봤으면 하는 성철 스님의 법어집으로                                        교수님은 열반 소식을 듣고 해인사로 달려가 성철 스님의
          『자기를 바로 봅시다』를 추천하기도 했다. 쉽게 정리돼 대중                                    법구가 모셔진 퇴설당까지 올라가서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들이 어렵지 않게 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선지                                    교수님을 알아 본 문도스님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식 (善知識)이 부재한 한국불교의 현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고 한다.
          마다하지 않았다.                                                              권 교수님은 “큰스님과 했던 출가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아
            “큰스님이 계실 때는 그래도 우리 한국불교가 안정이 되                                     직도 죄송한 마음 뿐”이라면서도 학자로서의 마지막 열정을
          었고 수행중심의 가풍을 정말로 귀하고 값지게 생각했습니                                       불사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다. 스님들 대부분이 청정한 승풍을 유지해야 한다는 공감                                        “『화엄경』을 더 깊이 연구해서 일반인들이 『화엄경』의 진

          대를 형성하고 있었어요. 일반인들 역시 불교는 수행을 최우                                     수를 맛볼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결국 큰스님의 은
          선으로 하는 종교라는 생각을 했었죠. 제가 자주 찾았던 각                                     혜를 갚는 길이 아닐까 싶네요.”
          화사만 해도 스님들이 잠을 자지 않고 공부를 했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길어진 인터뷰를 마치면서 교수님은 대학

            그런데 큰스님을 비롯해 여러 선지식들이 열반에 드신 이                                     원 수업을 위해 ‘이등병처럼’ 자료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
          후로는 이런 불교계 안팎의 기대들이 차츰 무너졌고 지금에                                      고는 강의실로 달렸다. 급하게 왔지만 학생들에게는 여느 때
          와서는 승풍실추 사건에 대해서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와 다름없이 인자한 미소를 보여준다. 교수님에게 정년퇴임
          것 같습니다. 정말로 가슴이 아픕니다.”                                               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될 것임을 예감하면서 캠퍼스
            권 교수님은 “성철 큰스님이 우리 세상에 함께 있었다는                                     를 다시 나섰다.

          것이 그저 기쁘고 감사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평생의
          스승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나타냈다.


          26                                         고경  2015.05.                                                                27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