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고경 - 2015년 7월호 Vol.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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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본래주인이었다는 엄비(嚴妃, 1854~1911, 영친왕 생                              을 위해 까만 고무신과 흰 고무신 몇 켤레가 댓돌에 놓여 있
          모)는 양정, 진명, 숙명학교를 세운 교육 선각자였다. 전혀 다                                  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른 건축 재료인 붉은 벽돌집을 만들면서 기존 한옥의 존재
          감과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높이와 크기를 조정한 건축주                                         안주인의 활동공간인 한입별당으로 이동하다
          로서의 탁월한 안목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경복궁을 무대로                                        벽으로 처리한 난간을 따라 이층계단 끝나는 부분의 하
          벌어지는 구한말 열강세력들의 잦은 물리적 충돌에 왕족의                                       얀 벽 위로 푸른 정사각형 바탕에 한글로 된 ‘한입별당’이란

          신변마저 보호할 수 없는 허약한 군사력에 앞에 스스로 자                                      네 글자가 두 자씩 또박또박 박혀 있다. 문을 열자 만만찮은
          기안전을 위해 벽돌집을 필요로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면적의 2층을 통째로 이용한 큰 주방이 있었다. 사각형 서
          빈속의 허한 가슴이 더 싸해졌다.                                                   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실내 인테리어와 창문너머 보이는 동

                                                                               기와로 만든 눈썹 처마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환자를
            한일 퓨전건물을 만나다                                                       진료하다 보니 잘못된 식생활 습관이 질병의 주요 원인임을
            화강암 붉은 벽돌집과 한옥의 대비라는 창조적 아름다움                                      절감하고 주변에 이 사실을 알릴 겸 건강한 먹거리 홍보를
          은 많은 건축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퓨전건축이 주는 조화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로움은 뭐든지 종합하기를 좋아하는 한민족의 성정과도 맞                                         ‘별당미씨’인 안주인은 말할 것도 없고 외과의사인 바깥

          아떨어졌다. 대구 삼덕동의 ‘한입별당’도 그랬다. 2007년 경                                  양반도 ‘요리하는 남자’를 겸하고 있었다. 정말 식약동원 (食
          주에 한옥호텔 ‘라궁’을 건축한 조정구 건축가가 이 집을 지                                    藥同源, 음식이 곧 약이라는 입장)이라는 사실을 부부는 몸소 실
          을 때 가장 염두에 두고 참고로 한 것은 두가헌이었다고 한                                     천하고 있었다.

          다. 병원은 한옥이고 부속건물은 일본식인 퓨전건물이다. 구
          입 당시 낡은 한옥과 적산가옥은 보존상태가 너무 나빠 리                                        ‘한입’이라는 다소 직설적인 집 이름을 사용한 것에 대해
          노베이션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고서 할 수 없이 기존 이                                      누구라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미지만 그대로 차용하여 다시 지었다고 한다.                                               현판을 보기 전에는 ‘한잎’이려니 했다. 그런데 의외로 ‘한
            환자들이 대기하며 지루함을 덜 수 있도록 정갈하게 꾸며                                     입’이었다. 신랑은 안주인이 잠시 나간 사이를 이용하여 ‘한

          놓은 중정 (中庭)을 바라보며 읽으라고 비치한 것은 인기 만                                    입은 집사람 별명’이라고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설명한다.
          화책인 『미생 (未生)』이었다. 그리고 마당을 거닐고 싶은 이들                                    아이들과 함께 외식을 나가면 부인은 음식 값을 아낄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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