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고경 - 2015년 8월호 Vol.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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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권의 여권만을 남겨 놓고 2003년 9월 23일 해인사 청
량사에서 열반에 들었다. 세수 53세, 법랍 33세.
원명 스님은 비교적 일찍 세연 (世緣)을 다했으나, 많은 제
자들을 남겼다. 환속한 제자들까지 포함해 다양한 국적의
제자 20여 명을 두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외국인 스님
원명 스님의 뒤를 이어 연등국제선원을 이끌고 있는 사람
은 인도 출신의 혜달 스님 (인도 이름은 Antim Priya Dewan)이
다. 2012년 9월부터 주지로서 대중들을 외호하고 있다. 성
2013년 10월 1일 원명 스님 10주기를 맞아 부도를 참배하고 있는 문도스님들
철 스님의 직계 제자들을 좀 더 만나고 싶었지만 대부분이
선방에서 정진하고 있다 보니 인터뷰 자체가 여의치 않았다.
무진 스님에게 한국불교를 전했고, 한국불교에 매료된 무진 그래서 손상좌이지만 현장에서 대중포교에 나서고 있는 혜
스님은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불교를 세계에 알리는 데 힘을 달 스님을 찾았다.
쏟기도 했다. 사실 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 혼란스러웠다. ‘청출어람(靑出
1985년 가을 귀국한 스님은 국제포교를 결심하고 성철 於藍)’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철저한 현지화(?)’라고 해야
스님을 찾았다. 늘 참선수행을 강조했던 터라 행여 꾸지람이 할까?
라도 들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성철 스님은 “중요한 일 스님을 뵙고 인도에서 온 스님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외
이니 가서 열심히 하거라.”며 격려했다. 모도 한국인 같고, 말씀도 한국인보다 더 유창하게 잘했기
원명 스님은 이후 해외포교에 매진해 싱가포르 연화원, 인 때문이다. 그리고 스님만의 ‘넉살’과 과도한(?) 붙임성도 인도
도네시아 해인사 포교원, 모스크바 달마사, 우즈베키스탄 정 인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다.
각사, 우크라이나 불심사, 키르키즈스탄 보리사, 방글라데시 예전에 스님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세수(世壽)가 어떻
원명사 등을 창건하는 등 다양한 해외포교 활동을 펼쳤다. 게 되세요?” “소띠요.” 이런 식이다. 한국인도 잘 모르는 ‘소
건강을 돌보지 않으며 해외포교에 매진하던 원명 스님은 띠’를 자신의 나이라며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서울과 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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