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고경 - 2015년 8월호 Vol.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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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포교의 선구자, 원명(圓明) 스님 안내로 당시 해인총림 방
연등국제선원은 계룡산 무상사와 함께 외국인 스님들이 장으로 후학들을 제접하
살며 수행하는 사찰로 유명하다. 무상사가 숭산 스님의 제 고 있던 성철 스님을 찾아
자들이 주석하는 사찰이라면 연등국제선원은 원명 스님 후 가 행자생활을 시작하며
학들의 보금자리다. 잘 알려져 있듯이 원명 스님은 성철 스 산문에 들었다. 성철 스님
님의 제자다. 선방에만 다녔을 것 같은 성철 스님 제자들 중 이 해인총림 방장으로 와
해외포교에 진력했던 스님이 바로 원명 스님이다. 원명 스님 백련암에 주석하면서 받
의 행장을 다시 짚어 본다. 은 행자 1호가 바로 원명
원명 스님은 1950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재학 스님이었다. 성철 스님으
시절 불교학생회 회장을 맡고 있던 절친한 친구의 영향으로 로부터 ‘원명(圓明)’이라는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스님은 학생회 모임뿐만 아니라 절에 법명을 받은 스님은 경전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을 모시고 자리를
서 열리는 법회에도 열심히 참석했다. 밀양 표충사에서 열린 과 어록을 더 공부하라는 함께 한 원명 스님(뒷줄 가운데)
수련회에 참석하고 난 스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새
님은 더욱 불심 (佛心)이 타 겨듣지 않고 참선해서 하루빨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려는
오르기 시작해 집에서 식 마음에 선방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선방에서 생활을
사를 할 때도 발우공양을 해 본 스님은 기초가 단단해야 함을 깨닫고 백련암으로 다
할 정도였다. 시 가 경전공부를 한 뒤 해인사, 봉암사, 상원사 등 전국 선
스님은 대학입시를 앞 원에서 12안거를 성만했다.
두고 표충사를 다시 찾았 김천 수도암 선원에서 정진하던 원명 스님은 화두가 잡히
는데 지나가던 스님이 “학 지 않고 자꾸만 영어단어가 떠오르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
생, 그 공부는 해서 뭐할 ‘사건’이 계기가 되어 서울에서 영어공부를 하다가 스리랑카
건가?” 하고 묻는 소리에 스님과 인연을 맺어 1982년 유학길에 오른다. 스리랑카에서
문득 출가할 결심을 굳힌 정진하며 영어공부를 하던 스님은 영국 출신의 비구니 무진
원명 스님 다. 스님은 표충사 스님의 스님을 만나 영국으로 건너가 공부했다. 그 인연으로 스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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