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고경 - 2015년 8월호 Vol.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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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칙】   남산까지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는 ‘내가 갑(甲)’이라는

 설봉이 뱀을 보다(雪峰看蛇, 설봉간사)  자긍심이 묻어난다. 그중에서도 ‘멘탈갑’은 운문이겠다. 가
          장 나이가 어린 하판이 방장(方丈)을 우롱한 꼴이다.
 설봉의존(雪峰義存, 822~908)이 대중에게 설했다. “남산(南  일언이폐지하면 ‘본래부처’들이 한데 모여 제 잘난 멋을
 山)에 한 마리의 독사가 있으니 그대들은 부디 조심해야   자랑하는 장면으로 요약된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위
 할 것이다.” 이를 들은 장경혜릉(長慶慧稜, 854~932)이 말했  대하다’라는 논리 앞에선 직위도 무의미하고 법랍(法臘)도

 다. “오늘 승당 안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거품이다. 깨닫는다는 건 ‘날것’으로 돌아가는 일이고 ‘날것’
 어떤 스님이 현사사비 (玄沙師備, 835~908)에게 이날의 광경  으로도 족한 삶일 것이다.
 을 전했다. 현사는 “모름지기 우리 사형 (師兄)쯤이나 되니  한편 뱀은 징그러운 짐승이지만 무위 (無爲)를 가르친다는

 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  점에서 일견 영물(靈物)이다. 다리가 없어도 잘만 다닌다. 무
 지 않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스님이 물었다. “그렇다면 화  엇보다 먹이를 씹지 않고 삼킨다. 모름지기 맛을 가리고 간
 상(和尙)께서는 어찌 하시렵니까?” 현사의 대답이다. “굳  을 보는 자들은 뱀을 배워야 한다는 사족.
 이 남산까지 들먹여서 무엇 하겠는가.” 운문문언 (雲門文偃,
 864~949)은 주장자를 설봉의 얼굴에 냅다 던지고는 두려

 워하는 시늉을 했다.


 남산이란 설봉산이며 곧 설봉이 머무는 거처다. 스스로를

 독사에 빗댄 설봉은 자신의 법력 (法力)이 타의 추종을 불허
 하는 것이라 뻐기고 있다. 설봉보다 서른두 살 아래인 장경
 은 스승의 비위를 맞춰줬다. “목숨을 잃었다”는 건 감화됐다
 는 역설 (逆說)이다. 왠지 진지하기보다는 능청스러운 어투로
 들린다.

 “됐냐?!” 이런 식이다. 설봉의 후배인 현사도 한마디 거들  장웅연(張熊硯)   집필노동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부터 불교계에
          서 일하고 있다. ‘장영섭’이란 본명으로 『길 위의 절』, 『눈부시지만, 가짜』, 『공부하지 마라』,
 었는데, 띄워주는 척하면서도 짐짓 먹이는 모양새다. 구태여   『떠나면 그만인데』, 『그냥, 살라』 등의 책을 냈다. 최근작은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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