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고경 - 2015년 8월호 Vol.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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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에 대한 방편으로 유지하는 한편, 돈오돈수는 부처로서
살아가는 길을 상상근(上上根)에게 개시(開示)하고 각종 근
기의 사람들을 평등히 돈오돈수로 이끄는 일원적인 수증
론을 구축하였던 것이다.”
이 글을 읽고서 『선문정로』 출간으로 한국불교학계에 폭
풍같이 몰아친 ‘돈점 (頓漸) 논쟁’은 아직도 성철 스님의 폭넓
은 선교 불교관을 살피지도 못한 채 ‘보조 국사의 돈오점수
비판’에만 머물러 있음을 이번 『명추회요』의 출간으로 더욱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불교학계에 『종경록』에
부처님 전에 올려진 성철 스님 사상 선양 서적들. 모두 80여 종에 이른다.
대한 선행연구가 깊이 있게 진행되어 있었다면 성철 스님의
돈점 논쟁은 또 다른 불교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리란 생각
입니다. 든 불구와 불경들이 불타 없어졌다고 합니다.
오는 2017년은 봉암사 결사 70주년, ‘백일법문’ 개당 50 875년에는 황소의 대란이 발발하여 884년에 종식되고
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앞으로 2년 남짓 동안 교계의 여러 그 후 혼란으로 907년에는 후량 태조 주전충에게 300여 년
학자분들과 의논하여 성철 선사의 선교관과 수증론에 대한 간 이어져 온 당나라가 멸망하게 됩니다. 이어서 황하 유역
학술회의를 2017년 11월 중에 개최하여 한국 선학과 수행 을 중심으로 후량(907~923), 후당(923~936), 후진(936~947),
론의 발전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후한(947~950), 후주(951~960)의 시대를 5대라 합니다. 후주
종밀 스님이 입적하신 841년은 당나라 무종의 회창법난 3대인 세종이 재위하여 배불정책을 실시해 일종(一宗)인 세
(會昌法難)이 일어나기 직전입니다. 그 후 100년 간의 중국사 종의 극단적 파불의 법난이 일어납니다. 그 뒤를 이어 조광
를 간략히 살펴봅니다. 윤이 후주를 멸망시키고 송나라를 세워 등극하니 송 태조
회창의 폐불사건 (845~847)은 규모와 철저함에 있어서 특 가 됩니다. (960)
히 유명합니다. 파괴된 사원은 4,600여 개소, 무명사원은 4 5대 시대에는 화북의 위 다섯 왕조 외에 화중, 화남, 사천,
만여 개, 환속한 승려와 비구니는 26만 5백 명이라 하고 모 산서에서 10국이 명멸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오월 (吳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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