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고경 - 2015년 9월호 Vol.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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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 대사의 가르침이 오랜 세월에 많이 유실되어 걱정

 이었는데 오늘날 고려에는 천태교본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스님의 자비가 아니고서는 누가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덕소 스님은 왕에게 청하여 바다 건너 고려에 사신을 파
 견하여 교본을 모두 베껴오게 하였는데 지금까지도 그 교본
 이 세상에 널리 전해오고 있습니다.

 천태의 교리와 교본을 전하려 고려의 체관(諦觀) 스님이
 중국에 파견된 것이 광종 11년 (960년)이었습니다. 체관보다   영명연수의 『종경록』 중 핵심만 간
                                      추린 『명추회요』. 원택 스님의 출판
 앞서 의통(義通)이 먼저 가서 천태종 15대 나계희적(螺溪曦    발원 23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寂)의 법사(法嗣)가 되었습니다. 그 뒤이어 체관도 함께 나계
 의 법사가 되었습니다.
 뒷날 체관, 의통이 중국에 간 이후 고려에는 천태종이 단  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본국으로 돌아가 제 각기 한 지방을
 절되었다고 대각국사 의천 (義天) 스님은 통탄했습니다. 정수,   교화하였다고 『경덕전등록』이나 『오가정종찬』 등에 실려 있
 균여 등의 화엄대가들은 마침내 거세당하고 말지만 친 천태  으니 고려 쪽 기록에는 상세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종계인 법안종은 존숭 받았습니다.    신라 말부터 전승되어 온 소위 구산선문(九山禪門)이 광종
          중기에 와서는 주춤할 정도로 법안종 사상이 크게 수용되
 천태덕소의 법을 이은 영명연수 선사에 대해서는 <고경>   었다고 합니다.

 27호(2015년 7월호)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영명 스님은 『종경  영명의 제자 중에는 도봉영소(道峰靈炤), 원공지공(圓空智
 록』 100권을 저술하였는데 해외까지 그 명성이 널리 퍼졌습  宗), 도봉혜거(道峰慧炬), 적연영준(寂然英俊), 진관석초(眞觀釋
 니다. 고려 국왕인 광종이 스님의 어록을 읽고 사신을 보내   超) 등이 유학하여 귀국하고 광종 때에 활약한 승려들이 포
 서신을 바치고 제자의 예를 올렸습니다. 광종은 금실로 짠   함되어 있습니다.
 가사와 자수정으로 만든 염주와 금조관(金操罐) 등을 바쳤  광종 20년 후반에 고달원 (高達院), 희양원(曦陽院), 도봉원

 습니다. 그리고 고려의 스님 36명을 영명 선사에게 유학 보  (道峰院)의 삼원(三院)을 세웠는데 모두 선종사원의 전통을
 내 도를 묻게 하였는데, 이들 모두가 스님에게 인가를 받고  세우는 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삼원 중에 도봉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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