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고경 - 2015년 10월호 Vol.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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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집으로 왔다. 절만 하고 놀 곳이 없어 백련암 곳                                                                   도 없는 절에 사시는 걸

          곳을 훑고 다니다 한번은 성철 스님이 씻고 있던 목욕탕 문                                                                    보며 ‘스님 제가 왜 머리
          을 벌컥 연 적도 있었다고 한다. 혼이 날까 노심초사하고 있                                                                   를 깎아요!’ 하고 말아
          었지만 성철 스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버렸습니다. 하하.”
            시간이 흘러 대학에 갔다. 그것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                                                                     그러다 성철 스님의
          학하니 교수님은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대학 입학 후                                                                    가르침을 직접 받을 수

          교수님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번에 백련암에 가면 큰                                                                    있는 기회가 왔다. 대학
          스님께 무슨 말씀이라도 드려야겠다.” 좁은 산길을 거침없                                                                     원에 다니던 어느 날 교
          이 올라갔다. 성철 스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좌선실 앞 의                                                                   수님은 가족들과 같이

          자에 앉아 있었다. 교수님이 말씀을 드리려는 순간 스님이                                                                     백련암에 갔다. 그날따
          먼저 포문을 열었다. “니가 공부하러 대학 갔나? 놀려면 그                                                                   라 성철 스님은 가족들
          만 둬라 인마!” 교수님은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자칭 ‘엘                                                                  근황과 안부를 물으며
                                                                               장성욱 교수님은 대중들과 함께 아비라기
          리트 대학생’은 성철 스님 앞에서 놀고먹기 좋아하는 청춘                                      도를 이어갔다.                       “친절하게” 대해줬다.
          에 불과했다. 교수님은 늘 그랬던 것처럼 삼천배만 하고 다                                                                      “느긋하게 기지개를

          시 산을 내려왔다.                                                           켜며 방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큰스님께서 부르셨어요. 밖
            그 후 “조금 정신을 차릴 때 쯤”에는 원명 스님 (前 연등국제                                으로 나가니 어두컴컴한 밤에 벽 앞에 큰스님께서 서 계셨
          선원 주지)이 교수님에게 출가를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수                                    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손가락을 사용하며 말씀하셨어요. ‘이

          님은 콧방귀도 안 꿨다.                                                        것은 나를 위해 하는 말이 아니고 너를 위해 하는 말이다.
            “원명 스님은 어릴 때부터 알아 좋아해서 자주 뵙고 저희                                    하루에 300배씩 하거라.’ 그 말씀이 전부였어요. 갑자기 불
          집에도 오시고 했는데 대학생이던 어느 날 ‘너도 머리 깎아                                     려 나가서, 컴컴한 어둠 속에서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큰스님
          라!’ 그러시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불교가 무엇인지도                                      의 행동에 놀라기도 하고 충격도 받아 멍한 상태에서 다시
          잘 모르고 절에 가면 좋은 대학가고 성공한다고 해서 갔을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는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뿐 아무 신심도 없을 때여서인지 그렇게 와 닿지가 않았어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 의미
          요. 또 회색빛 옷에 별로 맛도 없는 반찬에 밥을 먹고 재미                                    를 알게 되었지요. 몇 년을 다녀도 큰스님께서 한마디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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