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고경 - 2015년 10월호 Vol.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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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어느새 ‘천일 앞’은 고유명사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절 앞

                                                                               이건 뒤건 옆이건 그 일대는 전부 ‘천일전 (千日前, 센니치마에)’
                                                                               이 되었다. 뒷날 전철역 이름까지 그렇게 붙여졌다. 그 시장거
                                                                               리 사방의 입구에는 모두 붓글씨로 쓴 ‘천일전 (千日前)’이란 나
                                                                               무간판이 공중에 매달려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운문(雲
                                                                               門, 864~949) 선사의 “보름 전의 일은 묻지 않겠다. 15일 이후

                                                                               의 일을 한마디 일러보라.”고 외쳤던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
                                                                               日)’이란 법문이 생각났다. 하긴 상인들은 날마다 좋은 날 이
                                                                               어야만 한다. 새로 낸 가게가 자리를 잡느냐 아니면 문을 닫

                                                                               느냐 하는 손익분기점의 기로가 보통 삼년이라고 한다. 선사
                                                                               께서 다시 이 거리에 오신다면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
          도톤보리 운하 거리
                                                                                 “천 일 전의 일은 묻지 않겠다. 천 일 이후의 일을 한마디
          나는 대로 들러 간절한 마음으로 재수대통을 기원한 후 삶                                      일러보라.”

          의 전쟁터인 점포로 출전했다. 그 시절엔 사찰의 규모가 매
          우 넓었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의 금싸라기 땅은 자본의 논                                       ‘도톤보리(道頓堀)’에서 성철 스님을 떠올리다
          리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상가로 바뀌어갔다. 이제 도량전                                        견공(犬公, 개)의 눈에는 변(便, 똥)만 보인다고 했다. 어찌
          체를 둘러보는데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아담한(?) 공간만 남                                   강아지뿐이겠는가? 누구든지 모든 것을 자기 시각대로 눈

          았다.                                                                  에 보이는 사물을 나름 편집해서 바라보기 마련이다. 승려
                                                                               눈에는 ‘도돈굴(道頓堀, 도톤보리)’이라는 인파로 가득한 거리
            전철역 이름도 ‘센니치마에(千日前)’였다                                             이름이 무슨 토굴(혼자 사는 아주 작은 암자)이름처럼 보인다.
            법선사 경내에는 천일전(千日殿)이 있었다고 한다. 상인들                                    ‘도(道)를 단박에(頓) 이루는 굴(堀)’이라고나 할까? 하하. 하

          에게 가장 인기 있는 법당이었다. 그 법당이 절 이름을 대신                                    긴 금강산 표훈사 근처에는 돈도암(頓道庵)이란 암자도 있었
          하기도 했다. 한 때는 천일사로 불렸다고 한다. 선남선녀들마                                    으니까.
          저 약속장소를 ‘천일 앞’으로 할 정도였다. 세월이 쌓여가면                                      선사의 어록은 늘 시정(市井, 도시)과 아란야(阿蘭若,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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