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고경 - 2015년 10월호 Vol. 30
P. 9

그렇다면 ‘돈수(頓修)’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위를 말하  이 ‘돈수(頓修)’의 제3의 특징입니다.

 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다시 마조선에 대한 종밀과 연수의 차이에 대해
 이것을 정리하자면 ‘자비 (慈悲)’, ‘지계(持戒)’, ‘만선(萬善)’이  서 생각합니다.
 라는 세 개의 요소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 입장의 같음과 다름은 ‘임운(任運)’에 대한 이해에서 나
 부처님의 행을 자비, 지계, 만선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 이  타나고 있습니다. 마조 선사는 말했습니다. “…苦体地意, 但
 전의 선종에서는 보이지 않는 개념으로써 연수 선사의 수증  可 隨時著衣喫飯, 長養聖月胎, 任運溫時, 更有何事… ‘만약

 론을 특징 지우는 중요한 점입니다.  마음이 부처임을 체득하면, 다만 마음대로 옷을 입고 밥을
 일체의 중생이 일심 (一心)의 가운데 있음을 깨달을 때 자  먹을지라도 깨달음이 자라고 커질 것이니, 걸림 없이 마음대
 심 (自心)은 ‘동체(同体)의 대비(大悲)’라고 하는 본래의 자리에   로 시간을 보내도 된다. 이외 무슨 다른 일이 있겠는가?’”

 있으며 그 행위는 자연히 중생을 구제하는 이타행이 될 것  마조 선사는 심(心)이 부처(佛)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이니 연수 선사는 동체(同体)의 대비(大悲)가 ‘돈수(頓修)’의   “걸림 없이 마음대로(=任運)” 시간을 보낼 뿐이라고 말했습
 제1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니다. 그것을 종밀은 불완전한 ‘돈오(頓悟)’에 편안히 머물러
 일심 (一心)에는 본래적으로 계율이 갖추어져 있으며 그 일  서 ‘점수’를 포기한 ‘임병 (任病)’이라고 비판하고, 연수는 자비
 심 (一心)을 원만하게 깨닫게 되면 모든 행위가 자연히 계율  에 기초한 무심 (無心)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돈수’의 경계로

 이 된다고 연수 선사는 말합니다. 의식적으로 계율을 지켜  보았는데, 확실히 마조선에는 그 양쪽의 해석이 옳다고 할
 나간다면 그 스스로의 행위를 통해서 계(戒)를 갖춘 일심(一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확실히 마조 선사는 돈오 이후의 실
 心)의 근원에 있음을 자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돈  천에 대해서는 거의 어떠한 말씀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頓修)’의 제2의 특징입니다.  종밀이 마조의 임운(任運)을 불완전한 깨달음을 누리는
 연수 선사는 “일심 (一心)이 만선(萬善)의 근원으로써 일심  임병 (任病)이라고 보고 그것을 고치는 수단으로 점수의 필
 (一心)을 깨달은 사람은 스스로 만선(萬善)을 행한다. 만선(萬  요성을 설함에 대하여, 연수는 마조 선사의 임운(任運)을 부
 善)이란 선악의 분별을 넘어선 곳에서 행해지는 불교의 모든   처님 (佛)의 ‘돈수’와 같은 위치에 놓음으로써 마조선의 무사
 실천을 가리킨다. 깨치기 전에는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위해   (無事)가 안이한 현실긍정에 빠지는 위험성을 회피하였습니

 선행을 닦는 것임에 대하여 깨달은 후에는 일거일동의 모두  다. 연수에 의하면 마조 선사가 ‘마음이 부처, 卽心卽佛’이라
 가 일심 (一心)에 뿌리를 둔 이타행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  고 말함과 같이 우리들의 마음이 부처님의 마음인 이상 그


 6  고경  2015. 10.                                            7
   4   5   6   7   8   9   10   11   12   1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