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고경 - 2015년 11월호 Vol.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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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심밀경』에서는 심(心)에 대해 “이 식이 물질・소리・향
기・맛・감촉 등을 쌓이고 생장하게 하기 때문[積集滋長故]이
다.”고 했다. 아뢰야식에 저장된 여러 가지 식은 저장된 것으
로 끝나지 않고 그 사람의 언어와 행위로 나타나고, 그 사람
의 습성으로 드러난다. 한 사람의 개성과 성격을 심성 (心性)
이라고 부르는데 유식학에 따르면 그 심성조차 아득한 삶을
거듭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운명과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신도 아
니고 어떤 초월적 힘도 아니다. 자신의 미래를 결정지을 정
보를 쓰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삼업 (三業)이다. 자신이 하
는 행위를 지켜보고 하나도 빠뜨림 없이 기록하는 것도 자
기 자신에게 내재된 8식이다. 디지털시대를 맞아 사람들의
걱정 중에 하나가 한 번 기록된 자신에 대한 정보는 지워지
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단 디지털화된 정보만 지워지
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유식학에서는 내가 짓는 모든 행위정
보도 낱낱이 다 기록되며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결
국 인간의 삶과 미래는 자기에게 달려 있다는 자업자득(自業
自得)의 윤리는 유식설에 의해 보다 정교하게 설명된다.
서재영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등을 거쳐 현재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
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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