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고경 - 2015년 11월호 Vol.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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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인 ‘경계상(境界相)’으로 보았다. ‘경계상’이란 보는 주체에                                  가 조금은 더 가깝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대응해서 나타나는 ‘보이는 대상’을 가리킨다.                                              약은 그에 대응하는 병을 치료하는 것이므로, 병이 다 나
            여기서 ‘허공 꽃’이란 실제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                                    으면 약은 소용이 없다. 가령 감기가 다 나았음에도 감기약
          이 실제로 있다고 오인하는 것을 가리키는 오래된 불교 용                                      의 효능이 좋다고 자꾸 그것을 복용하는 것은 오히려 건강
          어이다. 이처럼 눈병에 걸린 사람에게 보이는 허공 꽃이 실                                     을 해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처님께서는
          제로 있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세 가지 미세한 마음 이후에                                      중생들의 병에 따라 적절한 가르침을 처방하셨으니, 이를

          여섯 가지보다 거친 마음이 나타난다. 여섯 가지 가운데 첫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고 칭한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교
          번째가 지상(智相)인데, 이는 허공 꽃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법을 약과 같은 것이라고 설하셨다. 다시 말해 부처님께서
          이에 대해서 좋은 꽃이라거나 싫은 꽃이라는 마음을 일으키                                      평생 다양하게 설법하신 것은 다름이 아니라 중생들의 병이

          는 것을 가리킨다. 이후 좋은 마음이나 싫은 마음을 쭉 이어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의 목적이 병을 고치
          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잡으려고 하고 싫은 것은 피하                                      는 데 있듯이, 부처님의 가르침 역시 중생들이 처한 고(苦)의
          려고 하는 마음이 연속해서 생겨나는 등 분별과 망상의 세                                      정체를 바로 보고 그것을 해소하는 데 있으므로, 약과 부처
          계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님의 가르침은 방편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므로 병이
            여기서 법장이 ‘멀쩡한 눈’과 ‘열병’의 비유로 보여주고 싶                                  다 나으면 약이 소용없어지고, 세계의 실상을 바로 보면 교

          어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병든 눈과 그에 대응해서 보이                                     (敎)와 관(觀)을 모두 쉬게 된다는 말씀이다.
          는 허공 꽃은 둘 다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병                                      성철 스님께서 『종경록』의 「표종장」에서 가장 먼저 이 구
          든 눈만 나으면 그것에 보이는 허공 꽃이 다 사라지는 것처                                     절을 인용하신 것은 아마도 이 구절이야말로 선종에서 말하

          럼, 이 세계가 나의 마음과 따로 있는 실체라는 생각 역시                                     는 ‘견성’과 ‘무심’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은
          그러한 마음에 대응하여 생겨나므로, 그 마음이 사라지면                                       아닌가 생각해본다. 또한 이 구절은 깨달음과 닦음의 관계
          그에 대응하는 망념의 세계 역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구                                     에서 본다면, 돈오돈수의 관점으로 곧장 연결된다는 점에서
          름이 사라지면 맑은 하늘에 해가 분명히 나타나듯이, 성철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스님께서는 망념이 사라진 자리에 진여의 해가 무한한 광명

          을 비춘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본다면 성철 스님께서 왜                                      박인석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
                                                                               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
          『종경록』의 ‘무심’을 ‘구경무심경’으로 풀어서 해석하셨는지                                    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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