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고경 - 2015년 12월호 Vol.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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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다시 보기
하지만 유식(唯識)에서처럼 마음에 대한 설명이 6식에 머
물지 않고 의식 근저에 제7식과 제8식이라는 개념이 추가된
유식과 선의 만남 : 다면 마음에 대한 설명은 달라지고, 번뇌를 끊기 위한 수행
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마음을 제6식으로 보느냐,
마음의 두 가지 작동 체계 아니면 의식 근저에 보다 심층적인 식 (識)이 더 있느냐에 따
라 수행과 깨달음에 대한 설명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마음을 깨치는 것을 강조하는 선과 마음을 8식
_ 서재영
으로 설명하는 유식의 만남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백일법문』은 이와 같은 기대에 부응하여 인도의 유식사
상을 설명하면서 선과 유식의 만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철 스님은 유식과 선이 만난 사례로 명말(明末)의 고승 감
산덕청 (憨山德淸, 1546~1622)을 소개한다. 감산의 『성상통설
(性相通說)』이라는 문헌에 나타난 내용을 통해 선에서 유식
감산덕청의 유식 이해 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유식에 대한 감산의
부처님은 불교란 ‘마음 밭[心田]’을 가는 종교라고 했다. 그 이해는 아래 인용문을 통해 간략한 요지를 엿볼 수 있다.
래서 마음에 관한 내용은 불교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선에서도 마음을 깨닫는 것이 핵심이므로 육조혜능은 “마 “항상함[恒]과 사량함[審]이 식(識) 가운데서 네 가지 구
음을 알지 못하면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다(不識自心 學法無 분을 만든다. 제8식은 항상하면서 사량이 없으니 [恒而非
益)”고 했다. 그런데 이 마음과 관한 초기불교의 설명은 12 審] 나[我]에 집착하지 않고 끊어짐이 없기 때문이고[無
처설이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주관이며, 그에 상응하는 間斷故], 제6식은 사량하면서 항상하지 않으니[審而非恒]
여섯 가지 대상이 객관을 형성한다. 마음이 12처로 설명된 나에 집착하고 끊어짐이 있기 때문이고, 전5식은 항상
다면 마음은 6식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하지도 않고 사량하지도 않으니[非恒非審] 나에 집착하
번뇌도 의식의 범주 속하게 되며, 번뇌를 제거하는 수행도 지 않기 때문이고, 제7식은 항상하면서 또 사량하니 [亦
의식 차원의 문제가 된다. 恒亦審] 나를 집착하고 끊어짐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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