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고경 - 2015년 12월호 Vol.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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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록의 뒷골목
            【제33칙】

            삼성의 금빛 잉어(三聖金鱗, 삼성금린)
 ‘내 안의 나’와 친해지기

            삼성혜연(三聖慧然)이 설봉의존(雪峰義存)에게 물었다. “그
            물을 꿰뚫은 금빛 잉어는 무엇으로 먹이를 삼습니까?”
            “그대가 그물에서 벗어나면 말해주지.” “1500명이나 거느

            린 큰스님이 말귀도 못 알아듣는군요.” “다 늙어서 주지
 _  장웅연
            (住持) 일을 하려니 여간하겠나.”



            선사들은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다. 생사의 경계를 초탈했
          으니 두려울 것이 없고, 시비 (是非)가 헛것임을 아니까 다투
          고 으스댈 것도 없다. 심지가 굳어서 좀체 흔들리질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살아오면서 남에게 분노한 적은 많지  그들에겐 아무리 찬란한 문명이라도 쓰레기장이요 모든 이
 만 실망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다들 조금씩은 썩었고 조금  념은 말장난일 뿐이다. 존재의 본질을 통찰한 자의 여생은

 씩은 뒤틀려있다는 믿음은, 요지경의 인생을 한결 수월하게   심심하고 심심하다.
 건너게 해준다. 모두가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 걸어온 길은   그러니까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하나같이 천양지차다. 기질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며 그리하  짐작하다시피 삼성이나 설봉이나 ‘그물을 꿰뚫은 금빛 잉어’

 여 재능과 역사가 다른 법이다.   들이다. 삼성의 질문은 ‘깨달아서 정말로 심심할 텐데 당신
 각자의 몸에 묶인 마음은 각자의 몸 안에서만 유효하다.   은 어떻게 지내느냐’는 안부인사다. 설봉의 대꾸는 짐짓 삼
 누군가가 제시하는 길은 사실 그에게만 평탄했을 길이다. 자  성을 깔보는 모양새인데, 거기에 욱할 삼성이 아니다. 화를
 신에게도 탄탄대로일 줄 알고 함부로 따라갔다가는 벼랑을   내면 지는 거다.
 만나기 십상이다. 참고는 하되 의지해서는 안 된다. 불신보  삼성은 설봉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고 ‘깨달은 자에게 쓸

 다 위험한 것이 맹신이다.   데없는 걸 물어본다’고 면박을 줬다. 설봉 역시 삼성이 쳐놓
          은 그물에 걸리지 않았다. ‘셀프디스’로써 아무렇지도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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