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고경 - 2015년 12월호 Vol.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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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버렸다. 자고로 상대가 흥분을 해줘야 놀릴 맛이 나는

 건데. 이렇듯 도인의 삶이란 별 게 아니다. 져줄 줄 알고, 알
 면서도 속아주는 것이다.


 【제34칙】

 풍혈의 티끌(風穴一塵, 풍혈일진)


 풍혈연소(風穴延沼)가 다음과 같이 수어(垂語)했다. “만약
                                  설봉의존 선사 진영
 티끌 하나를 세운다면 나라가 흥성하고 세우지 않으면 나

 라가 망할 것이다.” 이에 설두중현(雪竇重顯)이 주장자를
 들어 올리며 일렀다. “나랑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  더러워서 못 먹겠다는 게 이유였다. 명분을 부정한 자들의
 이 죽을 사람 없는가?”   선택은 은둔이었고, 이는 산승(山僧)의 보편적인 일상과 닮
          아 있다.
 티끌이란 어떤 일을 시작하는 발단을 뜻한다. 나라를 세  주의 건국에 기여한 주요 인물이 바로 유명한 강태공(姜太

 우려 할 때 그 출발은 ‘명분’에서 비롯된다. 군왕의 폭정에   公)이다. 평생을 낚시로 소일하다 책사를 찾던 무왕의 눈에
 대한 불만이든 새로운 세상을 향한 대망이든, 일단 명분이   들었다. 마침내 여든의 나이에 재상에 오르며 인생역전에 성
 세워지고 명분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여야 거사를 도모할   공한 절치부심의 표본이다. 평창에는 “높은 이름은 백이와

 수 있는 법이다.   숙제요 위대한 업적은 태공의 것”이라고 적혔다. 어느 한쪽
 본칙에 대한 평창에선 은(殷)의 주왕(紂王)을 척살하고 주  을 두둔하는 모양새로는 보이지 않는다.
 (朱)를 개국한 무왕(武王)의 고사가 등장한다. 그리고 백이(伯  “백발의 늙은이가 위수에서 낚시를 드리웠으나, 그 어찌
 夷)와 숙제(叔齊)는 이즈음의 역사에 기록된 충신들이다. 형  수양산의 굶어죽은 이와 같으랴? 다만 한 티끌에 따라 변
 제는 잘났건 못났건 주군을 폐하는 건 불의라며 무왕의 역  화가 생겼을 뿐이니, 높은 명성 혹은 위대한 업적 모두 잊기

 성혁명을 반대했다. 끝내 무왕이 집권하자 함께 산속으로   어렵다”는 송고(頌古)에서 중립적 관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숨어든 뒤 고사리를 뜯어먹으며 살았다. 주나라의 곡식은   강태공은 강태공대로 백이와 숙제는 백이와 숙제대로,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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