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고경 - 2016년 2월호 Vol.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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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얾’이라는 인연에 따라 지                                     고이면 썩고 쌓이면 병이 된다. 무심 (無心)이란 그래서 아무

         금 당장은 얼음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얼음이 물이고 물이 얼                                     것도 담아두지 않는 마음이다. 불우했던 유년시절, 주변의 질
         음이다. 그리고 영원히 얼음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냉혈한을                                       투와 시기, 억울한 세금고지서, 의절하고 잘 사는 친구 등등
         만든다. 공(空)하니까 채울 수 있고, 허망하니까 희망을 꿈꿀                                    을 떨쳐내지 못하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되고 운이 나쁘면 신
         수 있는 것이다.                                                             체적 종양으로 자라난다. 죄는 남이 저질렀는데 그 과보는 내
           사람 사는 사회에서 갈등이란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것처럼                                     가 받는 꼴이니, 전적으로 손해요 한심한 일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모두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면 지나친                                         그러므로 어떻게든 처치해야 할 것이 번뇌인데, 이즈막엔
         욕심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                                ‘마음치유’라는 방식의 수행법이 유행한다. 번뇌의 ‘무의미화’
         분하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 만한 정진도 드물다. 변                                   또는 ‘승화’가 주요한 코드로 보인다. 자신을 괴롭히는 원한의

         화와 관계로부터의 자유가, 실용적 관점에서의 해탈이다.                                        본질이 한낱 망상임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또한 ‘자비명상’에
           앞서가려다 끝내 엇나가는 법이다. 그냥 보면 되는데, 엿보                                    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열광한다. 원한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거나 넘보다가 기어이 사단이 난다. 반쯤만 갖는 절제와 늦게                                     전환하라는 것이다.
         가도 괜찮다는 여유가 필요하다. 눈부신 미래는 성실한 오늘                                        스트레스 없이 단출한 마음은 모든 사람의 로망이다. ‘원
         에 있다. 세상은 결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물론                                     수를 사랑하는’ 것도 거룩한 가치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왜

         내가 세상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할 의무도 없다. 답답한가?                                      곡이자 눈가림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마치 실컷 두들겨
         섭섭한가? 당신은 그저 당신의 삶을 살면 된다.                                            맞았는데 고소는커녕 병원비도 받아내지 않는 격이고 이불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격이다. 현실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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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9칙                                                                  이러한 연유로 무의미화 또는 승화가 아닌 ‘소화(消化)’라는
           발우를 씻어라(趙州洗鉢, 조주세발)                                                 화두에 집중하는 편이다. 번뇌를 피하거나 번뇌 앞에서 무릎
                                                                               꿇지 않고, 삼키려는 시도다. 돌이켜보면, 아무리 어쭙잖은
            어떤 객승이 조주종심(趙州從諗)에게 물었다. “제가 절에                                    능력이라도 그것은 모멸감과 열등감을 이겨내려는 노력이었

            들어왔으니,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조주가 말했다. “밥                                   고 역사였음을 알 수 있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 인생에도 공
            은 먹었냐?” “먹었습니다.” “그럼 밥그릇을 씻어야지.”                                   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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