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고경 - 2016년 2월호 Vol.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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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깨끗이 밥을 먹어도, 밥그릇엔 지저분한 흔적이 남  존심을 버리면서까지 자신의 작품이 오래고 널리 읽히기를

 는 법이다. 마음치유든 자비명상이든 내막을 살피면, 밥을 먹  바랐던 모양이다. 남의 명성을 도둑질해 이문을 취하는 양아
 었으면 똥을 누러 가거나 담배를 피우러 가지, 밥그릇을 씻  치보다야 낫지만, 여하튼 짝퉁이다.
 을 생각은 않는 것과 같다. 밥그릇을 씻으면 밥그릇도 깨끗해  ‘후백’은 이백, ‘후흑’은 이적을 가리킨다. 곧바로 기봉(機鋒)
 지는 건 물론이거니와 무엇보다 팔뚝에 힘이 붙는다. 아팠던   을 드러내지 못한 건봉을 두고 ‘호떡선생’ 운문이 골리는 형
 만큼만 강해지는 것이다.    국이다. 생몰연대조차 알 수 없는 선승이 장난기 심한 선승을

          만나 천하의 멍청이로 역사에 기록됐다. 그래도 어쩔 수 없
 ●        다. 생각하면 이미 틀린 것이다. 우물쭈물하거나 중언부언할
 제40칙     때를 떠올려 보라. 진실은 멀찌감치 떠나버리고 이익만이 입

 운문의 흑과 백(雲門黑白, 운문흑백)  안을 맴도는 법이다.


 운문(雲門) : 대답해주십시오. 건봉(乾峰) : 무슨 대답? 운  ●
 문 : 제가 늦었군요. 건봉 : 뭐가? 뭐가? 운문 : 후백 (侯白)  제41칙
 만 있는 줄 알았는데, 후흑(侯黑)도 있었군.  낙포의 임종(洛浦臨終, 낙포임종)



 중국 송나라 최고의 시인이었던 소동파(蘇東坡)는 당나라   임종을 앞둔 낙보원안(樂普元安)이 대중에게 말했다. “지

 최고의 시인이었던 이백 (李白)을 존경했다. 이백은 고숙계(姑  금 한 가지 일이 생겼기에 그대들에게 묻겠다. 그것이 만
 熟溪)를 비롯한 열 가지 절경을 한시로 노래한 바 있다. 이름   일 옳다면 머리 위에 머리를 포개는 격이요, 옳지 못하다
 하여 ‘고숙십영 (姑熟十詠).’ 그런데 소동파는 위작의 가능성을   면 목을 베이고서 살기를 바라는 격이다.” 어느 수좌가
 제기했다. “그 말이 천박하고 비루하여 태백의 글이란 게 의  나서서 말했다. “푸른 산은 항상 움직이고 밝은 대낮엔
 심스러웠다. 『동파지림(東坡志林)』” 그의 육감은 정확했다. 『동파지  등불의 심지를 돋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에 낙보는 “지
 림』에 “손막이 왕안국에게서 들은 말이라면서 이것은 이적의   금이 어느 때인데 그딴 소리를 하느냐.”고 다그쳤다.

 시다. 비각 아래에 있는 이적의 시집 속에는 이 시가 들어 있  언종(彦從) 상좌라는 이가 있다가 나서서 일렀다. “그렇다
 고, 정작 이백의 시집에는 이 시가 없다.”고 적었다. 이적은 자  아니다라는 분별적인 질문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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